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21

한땀 한땀 너를 그린다

글.전지윤

박학다식을 추구했지만 잡학다식이 되어가는 중.
도서관의 장서를 다 읽고싶다는 투지에 불탔던 어린이.
아직도 다 읽으려면 갈 길이 멀다.


『초록빛 식물 자수를 소개합니다』
김여울, 김이랑 지음
동양북스

미세먼지와 코로나19로 인해 실외 활동이 제한되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있다. 이는 반려동물만큼이나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도 했다. 2018년 즈음부터는 플랜테리어Planterior가 트렌드가 되었고, 이후 팬데믹으로 집 안에 감금되다시피 한 사람들은 하나둘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가끔 ‘반려식물은 햇빛과 물만 있어도 쑥쑥 자라니 키우기도 쉽고 정서적 안정과 위로를 얻기 좋다’면서 반려식물에 도전해보라고 권하는 글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시네’ 하고 속으로 삐죽거리곤 한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미 나는 충분히 깨달은 바가 있다. 식물을 집안으로 들인다고 해서 저절로 푸르러질 리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데려온 식물이 조금씩 생기를 잃거나 세상에 미련 없이 작별을 고할 때마다 늘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면 식물과의 반려 관계를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초록빛 싱그러운 식물에 대한 짝사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쉬운 마음에 붓과 팔레트를 집어 들고 수채화 식물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식물 자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원래 손바느질을 좋아하는 터라 집에 있는 자투리 천에 자신 있게 식물 잎사귀 모양의 수를 놓아보았다. 어라,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번이야말로 내 생활 반경에 식물을 가까이 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식물 자수와 관련한 몇 가지 책들이 있었지만, 나름의 선택 기준을 정했다. 첫째, 전문가 수준의 스킬 없이도 자수를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고가의 재료를 준비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셋째, 책에서 제안한 도안 이외에도 스스로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신중한 고민 끝에 다섯 가지 스티치 방법만 배우면 식물 자수를 할 수 있다는 김여울과 김이랑의 『초록빛 식물 자수를 소개합니다』를 선택했다. 구매 옵션으로 ‘한정판 비기닝 세트’를 골랐더니 수틀, 일곱 가지 색의 자수 실과 자수 바늘, 무명천과 기화성 수성펜까지 함께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림 작가 김이랑과 자수 작가 김여울은 자매지간이다. 이들이 일곱 평 작업실에서 길고양이 세 마리와 복닥거리며 작업한다는 소개글이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길수록 두 자매가 아늑한 공간에서 함께 식물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는 모습이 상상된다. 자수 재료와 도구에 대한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꼭 필요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았고, 자수의 시작과 마무리—심지어 실을 바늘에 꿰어 매듭을 짓고 수틀에 천을 고정하는 것까지—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수틀을 때 타지 않게 잡거나 바늘이 잘 빠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초보자가 맞닥뜨릴 어려움에 대한 안내도 잊지 않았다.
보통 조바심을 내거나 다소 급한 성미를 가진 사람들은 스티치의 기본 훈련 과정을 건너뛰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기초 과정에 ‘준비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처럼 모든 일에는 차분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니 건너뛰지 말기로 하자. 연습을 끝내고 나면 여린 이파리부터 녹음이 짙은 계절의 이파리까지 다양한 초록의 식물들을 천에 곱게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언니인 이랑 작가의 수채화 그림에서 나온 도안을 옮겨 그리고 여울 작가가 가르쳐준 대로 한 땀 한 땀 수놓다 보면 어느새 하나씩 식물 작품을 완성해가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앉아 가만히 바느질하는 시간이 요즘 내 일상의 가장 크고 확실한 즐거움이다. 이렇게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갖다 보면 단념했던 진짜 식물과의 교감도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