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August, 2018

한국 소설이 재미없다고요?

Editor. 이희조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하고 느낄 때 있으시죠?
뒤돌아 후회하지 말고 미리 읽어두면 어때요?
이럴 때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에디토리얼에 적힌 제 계정으로 메시지 주세요. 메일을 통해 상담해드립니다.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지음
민음사

한국 소설을 읽은 지 오래되었다. 신간이 나오면 찾아 읽는 한국 소설가 작품도 딱히 없다. 온라인, 오프라인 베스트셀러 중에 한국 신인 소설가의 작품이 있는지 살펴보아도 한국 소설은 존재감이 미비하다. 일본 소설 신간들은 당당히 매대에 누워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한편 정작 한국 소설들은 책장에 꽂혀 책등만 간신히 내놓고 있다. 주변에선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소설은 문장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이나 서사가 약하다’는 이야기가 번번이 들려온다. 우리 출판가에서 한국 소설이 언제부터 이렇게 아웃사이더가 되었나? 정말 한국 문학은 ‘노잼’이 되었나?장강명, 그는 이런 척박한 한국 문학계에서 드물게 이름을 알린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10년간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하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이후 전업 작가로 전향,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을 성공시키며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자기가 몸담은 한국 문단에 대한 애정 어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몸에 깊게 배어있는 기자정신을 한껏 발휘해 르포를 써냈다. 한때 온 국민의 유행어였던 ‘○○○, 로맨틱, 성공적’ 을 따라 한 건가 싶은 도발적인 제목의 『당선, 합격, 계급』이다.
그는 한국 문학계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한 가지 가설을 내놓는다. ‘문학공모전 제도가 한국 대중 문학의 수준을 낮추고 작가들의 데뷔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문학계는 문학공모전이 만들어놓은 시장 안에서 돌아간다. 신춘문예에 뽑혀야만 등단 작가가 되고 그마저도 바로 책을 출간하기 어려웠던 과거, 더 많은 작가에게 출간 기회를 주고자 만들어진 것이 문학공모전이었다. 1977년 그 시초를 끊은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은 곧 한수산(1회), 이문열(3회)과 같은 대박 작가를 발굴해냈다. 이후 한국 소설가 지망생은 출판사에 직접 투고해 편집자의 연락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문학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가 되었다.
취지는 좋았는데 왜? 사실 장강명이 지적하는 것은 문학공모전 제도 그 자체가 아니다. 문학공모전의 심사방법이 공정한지에 대해 책에서 꽤 비중 있게 검토하고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해선 예상외로 꽤 ‘공정하다’고 자평한다.(본인도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장강명이 불만을 품는 지점은 점점 문학공모전이 작가 지망생 사이에서 하나의 ‘공채’처럼 작용하기 시작한 현상이다. 이제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하지 않으면 달리 데뷔할 기회가 없다. 수상 작가가 아니면 신문사의 신간 서평에서 다뤄지지 않고 문예지 청탁에서 은근히 배제된다. 그러다 보니 문학공모전 입맛에 맞는 소설들만 쓰이고 출간된다. 또 문학공모전에 한 번 당선된 작가가 또 다른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일도 번번이 벌어진다. “바로 나, 장강명”.(이런 문장을 자기 책에 쓸 수 있다니!)
이렇게 장강명은 문학공모전이 하나의 ‘간판’이 되어버린 현실을 꼬집는다. 사실 장강명은 문학 얘기만 하려는 게 아니었다.(그럼 그렇지) 그가 보기에 문학 공모전 제도는 우리 사회의 공채 제도를 많이 닮았다. 명문대 입시, 대기업 공채, 사법시험, 각종 전문직 시험 등에 통과해 일종의 간판을 획득한 사람들은 일종의 계급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공고한 성에 입성한다. 합격자들은 웬만해선 성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그 성벽을 더 단단히 하는 데 암묵적으로 일조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 악착같이 공채에 매달린다. 응시자가 많아지니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는 점점 더 지엽적일 수밖에 없다. 문학공모전도 마찬가지로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지망생 사이에서는 글씨체는 뭐로 해야 하고 여백은 얼마를 둬야 하는지 등의 낭설이 떠돈다.
문학공모전 제도를 비롯한 한국의 공채 제도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유일하게 시행되는 이 제도는 제너럴리스트를 대규모로 채용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성공한 나머지 다른 한쪽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어야 할 ‘조금 모자라지만 잠재력 있는’ 청년들의 실험이 막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의 재능을 누군가 알아봐 줄 것이라 믿으며 꿈에 부풀었던 한국 청년들은 치열한 공채 제도에 한두 번 탈락을 경험하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취업 우울증을 겪으며 자기 자신을 ‘루저’라고 부른다. 공채에 합격한 자들도 회사가 자기와 맞지 않더라도 한번 얻은 간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자신을 괴롭혀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괴로운 얼굴로 회사에 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요새 젊은이들은 열정이 부족해’ ‘끈기가 없어’라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대안은? 장강명은 한국 작가 중 드물게 거침없이 대안을 제시하는 작가다. 그 대안들은 보통 완벽하지 않으며 때로는 어설프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말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한국 소설이 재밌어지기 위한, 한국 사회가 유능한 인재들을 기죽이지 않을 대안, 궁금한가? 그렇다면 “직접, 읽어봐,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