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하늘과 땅을 가득히 채울 지식의 광장 타이완 국립 자오퉁 대학교 하오란 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사진. © Lee Kuo Min

타이베이 동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신주시Hsinchu는 타이완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도시다. 최첨단 과학기술 개발 사업이 벌어지는 이 활기찬 도시에 자리한 국립 자오퉁 대학교는 본래 1896년 상하이시에 설립되었다. 그러다 1949년 국공내전으로 중국 공산당에 접수되었고, 이에 따라 1958년 신주시로 신생 캠퍼스를 옮겨가게 되면서 현재의 지역에 새로이 터를 잡았다. 상하이시에 남아있던 캠퍼스는 이후 국무원의 인가를 얻어 독립적인 조직 편제로 출범해 상하이 자오퉁 대학이라는 교명으로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국립 자오퉁대학교는 타이완의 첫 4년제 공학 대학으로 공학, 정보기술 등 실용학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첨단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 신주시의 현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는 만큼 국립 자오퉁 대학교는 도시 환경과 기술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이에 필요한 인재 양성소로서 그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1998년에 세워진 하오란 도서관Haoran Library은 국립 자오퉁 대학교 교정에 위치한 중앙 도서관으로, 타이완식 정원과 함께 사색과 휴식을 제공하는 장소다. 예스러운 겉모습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의 2층과 3층에는 ‘지식 아고라Knowledge Agora’라는 이름의 특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정기간행물과 학술 DB를 제공하는 자료실이자 서가로, 다른 층에서 볼 수 있는 익숙 한 대학 도서관의 모습과는 달리 섬세한 설계를 기반으로 2018년에 새로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공간을 설계한 타이완 건축가 슈웨이양Hsu Wei Yang은 캠퍼스 내의 ‘정보통신기술 워크숍 공간’도 설계했다. 그는 두 공간을 설계할 때 자유롭게 지식을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 실용학문에서의 지식이란 천재적인 학자들이 혼자서 몰두하여 쌓아 올린 상아탑이 아닌, 여러 사람이 협동하여 실현해내는 혁신에 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바탕이 되었다.
지식 아고라의 내부는 현대 과학기술과 건축 미학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세대를 위한 독서 공간으로의 탈바꿈을 꾀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다른 층의 구식 인테리어와 아주 이질적이지 않도록 연출하는 것 또한 건축가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슈웨이양은 3층 중앙에 있는 타원형 광장을 도서관의 전통적 구조와 새로운 읽기 공간의 태동이 교차되는 지점으로 구현해냈다. 천장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조명과 눈썹 모양의 날렵한 곡면으로 낮고 길게 놓여 있는 책장의 어우러짐은 그 특유의 독특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반적인 서가의 모습을 보이는 다른 층과는 달리 지식 아고라에는 널찍한 책상과 소파가 놓여있다. 학문의 전당으로 여겨지는 대학 도서관보다는 오히려 대형 서점의 매대처럼 보이는 이곳에 비치된 정기간행물은 3천여 종에 이르며, 온라인 학술 DB도 1만여 가지다. 간행물을 만드는 사람들, 그 간행물에 개재된 학문적 성과들, 가장 최근의 분야별 지식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물이 집약된 책장까지, 이곳은 채우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 삶도 아고라처럼 여러차원의 창작이 결합된 것”이라는 건축가 슈웨이양의 아이디어가 공간 전체에 적용된 셈이다.
도서관의 이름인 ‘하오란(浩然)’을 한자 음으로 읽으면 ‘호연’이다. 호연지기는 『맹자』에서 언급되는 양심적이고 의로운 가치다. 문자 그대로는 넓고 큰 모습, 인간에 있어서는 광대하고 강직한 마음, 보다 상징적으로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찬 넓고 큰 원기를 뜻하는 말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호연지기는 자고로 군자가 인격을 잘 갈고닦아야 닿을 수 있는 지극한 경지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고도로 복잡해진 시대에서 혼자 도달 할 수 있는 경지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크고 넓은 도덕적 실천을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다 함께, 빠르기가 아닌 느림의 행보가 요구된다. 양심뿐만 아니라 지식과 학문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이렇게 현시대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호연지기의 본질을 하오란 도서관은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공간과 사람과 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식 생산에서 나아가 드넓은 지혜를 모으는 공간으로써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November20_SpecialReport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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