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October, 2015

피곤하고 지루한 일상과 업무에 지친 당신

Editor. 지은경

몇 분 더 자고 싶은 유혹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일어난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우유 한 잔을 단숨에 들이마신 뒤 가방을 챙긴다. 가방 속에는 며칠째 의미 없이 들고 다니는 수첩과 필통, 지하철에서 읽으려던 책도 한 권 들어 있다. 사무실에는 어제 두고 간 피곤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지러운 책상과 쌓여 있는 커피 잔, 여기저기 끄적거린 메모장, 먼지 쌓인 칫솔, 다 죽어가는 작은 화분 하나. 전쟁과 같은 하루가 시작되기 전 드는 생각은 항상 같다. “10분만 일찍 나와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었잖아.”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을 타박하지 않기로 했다. 이룰 수 없는 계획은 애초에 하는 게 아니다. 치열한 시간과의 싸움 끝에 하루가 지고 퇴근길에 집 앞 구멍가게에서 언제나처럼 맥주 세 캔을 산다.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에 앉는다. 맥주 캔을 딴다. 초점 없는 눈으로 한동안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한다. 어느새 시계바늘은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참, 오늘은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그런데 귀찮다. 내일모레 버리지 뭐. 쓰레기의 퀴퀴한 냄새는 이틀을 더 나와 함께 보낼 것이다. 세 번째 맥주 캔을 따서 침대로 갔다.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에 둔 책을 열어보지만 눈은 반쯤 감겨 있다. 결국 세 번째 캔은 끝내지 못하고 잠이 든다. 캄캄한 밤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고 다시 알람이 울린다. “젠장, 다시 날이 밝았네.” 이렇게,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또 다음 날은 언제나 우리 앞에 찾아온다. 피곤한 업무로 일상이 침해당하고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 지옥과도 같은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일상적인 삶』 장 그르니에 지음
민음사

철학서와 시적 명상, 풍부한 서정으로 가득한 에세이를 쓰는 프랑스의 작가 장 그르니에는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요소들, 예를 들어 여행, 담배, 비밀, 독서, 수면, 고독 등의 단어들을 나열하며 그 요소들이 가진 본질에 관해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 감추어진 속내를 확인한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작가로서 느끼는 감정과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삶은 진정 의미 없고 무정형한 것일까? 우리의 일상은 별다른 자각도 의식도 없이 그 속에 안주해도 될 만큼 애초부터 낯익은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늘 행하는 습관이나 일상의 행동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거나 긴장을 부여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무렇지도 않은 삶,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심지어는 보잘것없이 여겨지는 지긋지긋한 이 삶이 그대로 유지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다시 긴장의 끈을 부여잡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지루한 일상처럼 돌아가지 않게 되면 우리는 곧 불편해지고 만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 일상을 채우고 있는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 과연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떻게 우리를 지탱해가는지, 그리고 그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어떠한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지를 느껴보도록 하자.
“우리의 일상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여행을 하기도 하며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고독이나 침묵 혹은 비밀로 인해 사람들과 단절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 이 모든 존재 양태들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을 분석해보면, 일상 생활로부터 사람의 결 자체로 넘어가는, 나아가 예술작품에까지 다다르게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오솔길이 드러난다.”—본문 중
장 그르니에의 친절하고도 얇은 이 책을 통해 어쩌면 당신 삶에 조금은 특별한 오솔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지 모른다. 우리의 일상이야말로 우리에게 내려진 최고의 축복임을.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이레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의 이슬이 증발하듯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일 뿐이다.”—본문 중
매우 쉽고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등을 일상의 삶에 대입시켜주는 작가 알랭 드 보통. 그는 이 책을 통해 일이 지니는 의미와 우리가 왜 일을 하며, 또 무엇이 이리도 일을 즐겁게도, 혹은 괴롭히기도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우리 안의 많은 것을 억눌러야 한다. 타고난 게으름과 싸워야 하며 낙천적인 성격을 가끔은 숨겨야 하기도 한다. 또한 일은 나 혼자만의 업무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일들은 어마어마한 단체 작업이다. 혹여 그것이 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많은 이들이 일을 한 결과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연결고리로 복잡하게 이어진 일은 결국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 혹은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들, 이 세상의 모든 작업들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더 행복해질 수도, 혹은 더 끔찍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를 통해 우리가 진실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일의 모든 과정을 앎으로 우리의 삶은 송두리째 변할 것이고 지루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인생은 또다시 음모와 사랑, 철학과 기쁨, 슬픔이 고루 어우러져 활기를 되찾을지도 모른다. 마치 참치를 잡는 광경을 지켜본 후 그의 삶과 생각의 방식이 달라지듯 말이다.
“낯선 땅에서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나는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서 오래전부터 눈에 익은 밝은 주황색 라벨 두루마리와 우연히 마주치자 놀라면서도 가슴이 약간 뭉클했다. 어부들이 몽둥이로 참치를 때려죽이는 장면이 기억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그 라벨의 사진—잔교와 파란 하늘을 찍은 고요한 분위기의 사진—뒤에 숨어 있는 유혈이 낭자한 과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본문 중

『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열린책들

찰스 부코스키는 항상 독자들을 당황시킨다. 대책 없고 뻔뻔하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무것도 교훈으로 가져갈 것이 없을 것 같은 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소설 속 주인공은 여자와 술, 경마에만 인생을 거는 대책 없는 하층민 헨리 치나스키다. 그는 매일 술에 찌든 몸으로 우체국을 출근한다. 그리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매일 견뎌낸다. 그 안에서 그는 영원히 노동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의 삶은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금기시되는 욕망을 태연하게 고백하는, 이 세상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 헨리 차나스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그의 욕망과 행동들이 과연 그른 것인지, 아니면 너무도 자연스럽고 솔직한 인간의 욕망일 뿐인지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된다. 우체국의 하급직원인 헨리는 12년간 반복되는 고된 노동을 견디고 비합리적인 관료주의에 시달리는 삶을 살지만 조직의 부속품이 되는 것만은 거부한다. 저급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함은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틀 속에서 우리가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를 직시하게 해준다. 책의 주인공 치나스키는 여러 번 지은이인 찰스 부코스키와 겹친다. 실제로 우체국 직원이었던 부코스키는 이 자전적인 소설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을 썼다.”—본문 중
이 책은 거대한 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우리에게 과감해지라 말하며 용기를 가지라 말한다. 자유로워지라 말하며 한없이 도발하라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을 잃게 될까?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행동들을 통해 자신 속 내면과 제대로 맞서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듯 그렇게 내면과 마주한 후 우리는 사회로부터 감추고 억압되어야 했던 자유를 드디어 찾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겠지. 한없이 자유롭고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자신만의 길로. 마치 하급 우체국 직원이었던 부코스키가 어마어마한 거장의 작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