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20

텔레비전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

글.윤성근

서울시 은평구에서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을 꾸리고 있다. 『서점의 말들』『내가 사랑한 첫 문장』 등과 책과 서점에 관한 책을 몇 권 썼다.


『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을유문화사

나는 군대를 전역하면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직장에 다니면서 따로 집을 얻어 시작한 독립 생활을 계기로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이것을 ‘실행’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다. 실행이란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것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 않는 것을 실행한다는 게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 계획은 실행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거부’라 하는 편이 좋겠다. 그래, 나는 거부하기를 실행했던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다던 바틀비처럼 말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거부하기’를 20년 넘게 지키고 있다. 여전히 내 생활공간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이제는 오히려 텔레비전의 공백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하거나 식당에 갔을 때,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는 텔레비전을 보면 온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이질감을 느낀다. 쉴 새 없이 전환되는 화면과 정신없이 지나가는 자막들을 볼 때마다 저 넓고 평평한 기계가 내 생각과 정신을 쏙 빨아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혼자 생각하거나 공상하는 걸 즐겼다. 그건 내 고유한 놀이였고 나만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그림책이나 만화책도 싫어했다. 그림 없이, 글씨를 읽고 스스로 상상하는 게 더 좋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일종의 상상력 훈련이었다. 나는 혼자만의 상상에 빠진 채 온종일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런 시간을 보낸 덕분에 내 기억력은 풍부한 감성을 덧입은 또렷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가끔씩 옛 동네를 찾아가 어릴 때 걸었던 그 골목을 걸어본다. 많이 변한 곳이 있는 반면에 앞으로도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도 있다. 어릴 때 텔레비전을 보고 자랐다면 절대 이런 기분을 가질 수 없었을 거라 확신한다. 내가 지내온 공간, 내가 걸어온 시간이 온전히 내 곁에 있다는 충만함만으로도 이미 큰 재산을 소유한 것 같다.
불행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과거가 모두 사라져버린 아우스터리츠라는 한 남자에 비하면 나는 꽤 행운아인 셈이다. 제발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 사람은 히틀러와 나치가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던 그 시기에 일종의 구조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에 입양된 수많은 아이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자랐다. 건축가가 된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채 방황한다. 그는 평생 시계를 가져본 일이 없다. 과거를 알 수 없는 이 남자에게 시계처럼 무의미한 물건이 또 있을까? 하지만 아우스터리츠는 지칠 줄 모르는 탐구 정신과 끈기로 자신이 어린시절에 겪은 일과 그 의미를 추리한다.
그의 추리는 방 안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면 나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부유하는 공간을 실제로 방문하고 치밀하게 기록한다. 우리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걸 영상으로 제작해 실제처럼 생생한 방송용 프로그램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걸 보고 싶지는 않다. 영상을 보는 순간 그 공간은 실제가 아닌 필름 속 가상 세계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아우스터리츠에게 시계가 필요 없는 것처럼 내겐 텔레비전이라는 기계가 무용지물이다. 텔레비전은 내게 아무런 흥미도 끌지 못한다. 차라리 아우스터리츠가 악착같이 수집했던 흑백 사진이라면 모를까. 기억을 찾으려는 이 사람은 집에 늘어놓은 사진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저녁이 될 때까지 나는 종종 여기 누워, 시간이 내 안에서 어떻게 뒤로 돌아가는지를 느껴요.”
그가 텔레비전 앞에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면 이와 같은 충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뒤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찾고 싶은 마음만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일이다. 결국 그가 완성하려는 것은 삶 자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 ‘아우스터리츠’는 한 사람의 이름이자 그의 삶인 셈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 속에 텔레비전이 등장하지 않는 게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