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7

코미디를 찾는 이기적인 이유

Editor. 김지영

정도를 막론하면 일주일 중 나흘은 술과 함께한다.
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행복해진다.
가끔 내 주업이 에디터인지 프로알코올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블랙코미디』 유병재 지음
비채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있다.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하루를 망친다. 직접 맞닥뜨리지 않더라도 전화나 메일 등을 통해 엮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답답한 가슴을 토닥이며 “괜찮아”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등 다양한 말로 나를 위로하지만, 이미 달궈질 대로 달궈진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린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꼬이면, 잘 돌아가던 다른 일도 연쇄적으로 고장 난다. 하고 있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깜빡한다. 그러다 보면 또다시 자책의 시간이 돌아온다.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한 이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어도 성격상 그러지도 못하니 다른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종종 하는 생각이지만, 코미디는 분명 각박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내 상황과 비슷한 설정을 발견하면 감정이입이 되고, 후련한 한 방을 대신 날려주는 코미디언에게 박수를 보내게 하는 그런 힘 말이다. 그래서 우울해지면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애써 찾아 시청한다. 전에는 짧은 영상이나 프로그램을 찾았지만, 유병재의 『블랙코미디』를 서점에서 구매한 후에는 책을 들고 조용히 혼자일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주댕이 싸물어. 나한테 상처 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까도 내가 까
돈 내고 살 책을 고르는 데 무척 까다로운 편이라 꼭 서점에서 실물을 확인하고 책을 산다. 그리고 30장 정도는 꼼꼼히 읽어보고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맞는지도 확인한다. 유난 떤다는 가시 돋친 말이 날아와도 어쩔 수 없다. 최근 일 잘하는(?) 편집자의 보도 자료에 속아 실패를 경험했던 터라 더욱 신경이 곤두선 탓도 있다. 그럼에도 『블랙코미디』는 작가 소개와 여는 글만 읽고도 구미가 당겼다. 신간 코너에서 책을 들고 혼자 웃어본 건 처음이다.
“대한민국 육군을 만기제대했고 만화와 영화,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며 혈액형은 O형이다. 저자로서는 이 책이 처음인데 원래 이런 건 남들이 써준다는데 나는 왜 내가 쓰고 있냐.” —저자 소개 중
그간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글과 그림을 엮어 출간한 유쾌 상쾌 통쾌한 책이 많았지만, 이 책처럼 인간적인 모습까지 지닌 책은 없었다. 특히 2장 「분노수첩」은 시쳇말로 ‘빡치는’ 순간에 읽기 좋다. 유병재의 말에 따르면 분노수첩에는 본래 화가 많은 편이지만 용기가 부족해 삼켰던 분노를 옮겨적었던 글을 모았다고 한다. 그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코미디언이라 해도,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사는 별개의 존재는 아니니 분노를 느끼는 상황도 비슷하다.
본인만의 독특한 어조로 분노하게 한 모든 것에 날리는 강펀치는 내 분노까지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대개 이런 책은 사서 읽는 경우가 드물다. 분명 한번 읽고 책장에 꽂아둘 게 뻔하니까. 어지간한 책 수집가인 나 역시 이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이 글을 읽고도 고민 된다면 당신은 탈출구가 필요할 정도로 삶에 지친 사람은 아니니 다행이다.
“삼십 년을 같이 산 가족들도 쟤 속을 모르겠다 하고 이따금씩 나도 내 마음 모르겠는데, 입사하고 한달 지낸 네가 어떻게 날 그렇게 잘 아냐.” —내가 쟤 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