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에디터:전지윤
자료제공: 길벗 어린이

아이가 말문이 트인 해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되면 우리 가족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로 전화를 건다. 북미사령부는 60여 년이 넘도록 매년 12월 24일 이곳으로 걸려오는 모든 아이들의 전화를 받아주고 있다. 아이가 수줍게 인사하면 상대방은 웃음을 머금은 친절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마치 네 전화가 오기를 내내 기다렸다는 듯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이름이 무엇인지, 일 년 동안 착한 아이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는지 등을 물어봐 준다. 그런 것도 잠시,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는 아이의 염원은 부끄러움을 기어코 이기고야 만다.
“산타클로스는 지금 어디쯤 계세요?”
미 공군 사령부의 레이더에 보이는 산타클로스의 위치를 통해 산타클로스가 대략 몇 시쯤 서울에 도착할지 등을 알려준다. 단, 늦게까지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이와 실랑이할 엄마를 위해 일찍 잠에 들지 않으면 어차피 산타클로스를 만날 수 없다고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쯤 되면 아이는 이미 이불을 코 아래까지 덮고 전화기를 향해 외친다.
“저 자고 있어요!”

윌로비 씨의 크리스마스트리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의 원제는 ‘Mr. Willowby’s Christmas Tree(윌로비 씨의 크리스마스트리)’로, 1963년에 첫 출간된 뒤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어린이가 모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느 곳에나 있는 붙박이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로버트 배리 Robert Berry는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오랫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로버트 배리가 쓴 다수의 어린이책은 각종 도서상을 받았으며, 1962년에 출간한 『The Story of Faint George(희미한 조지의 이야기)』는 그해 뉴욕 타임스에 최고의 그림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의 오랜 인기를 반영하듯 < 머펫 쇼Muppets Show>와 <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등을 제작한 짐 핸슨 컴퍼니Jim Henson Company는 1995년에 책과 동명의 영화를 제작하여 텔레비전에서 방영하였다. 배리의 삽화 속 윌로비 씨는 보드게임 모노폴리Monopoly에서 중절모에 지팡이를 들고 세계여행을 독려하는 신사처럼 잘 다듬은 멋진 수염을 한 노신사이다. 반면, 텔레비전 영화에서는 지난 십 년간 아이언맨Iron Man이 되어 지구를 수호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Robert Downey Jr.가 윌로비 씨 역할을 맡았다.

80년대 초반 미국 학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여행 가방 안에는 정말 탐스럽고 예쁜 장미꽃이 수채화로 그려진 스웨터와 그림책 몇 권, 레고 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사 온 그림책들 중 하나가 바로 『Mr. Willowby’s Christmas Tree(윌로비 씨의 크리스마스트리)』였는데, 내가 꽤 클 때까지 간직한 재미있는 책이었다. 책 표지에는 저택의 홀에 놓인 커다란 나무가 그려져 있다. 막 배달되었는지 밧줄을 당기는 아저씨 옆에는 놀란 모습의 노신사가 있다. 너무 놀라 턱을 감싸 쥔 채 입을 벌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 천장에 닿아 끝이 구부러진 이 커다랗고 멋진 나무 때문이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맨 윗 부분은 가장 멋진 장식이 놓여야 하는데 구부러져 있다니, 예쁜 나무 끝이 망가질까 걱정하던 기억이 난다. 또 나도 모르게 자꾸 나무가 구부러진 방향으로 몸을 구부린 채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 책이 선사하는 특별하고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대개 크리스마스에 관한 그림책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스토리와 그에 걸맞게 서정적이고 아늑한 색감으로 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책은 꼭 만화를 보듯 표정이 살아있고 유머러스했다. 이야기 전개와 일러스트레이션이 절묘하게 어울리고, 발자국으로 동선이 드러나 있어 더 생동감의 느껴지는 덕에 어린이들이 혼자 펼쳐 보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린이를 위한 책들은 대개 운율을 맞추는데, 이 책의 영문 원작도 마찬가지다. 운율을 맞추니 마치 노랫말처럼 읽기가 쉽고, 잘라낸 나무 끝이 놓이는 곳마다 조금씩 너무 커서 구부러지는 것도 웃음 포인트이다. 그렇게 잘라내고 잘라낸 끝에 숲속 가장 하찮은 동물들까지도 크리스마스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어린아이였던 내게도 참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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