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커다란 지붕으로 햇볕을 끌어안는 책 누각 워싱턴 D.C. 사우스웨스트 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사진. © James Steinkamp Photography 자료제공. Perkins and Will

한국의 수도는 서울, 일본의 수도는 도쿄,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D.C.! 워싱턴이 수도로 결정된 이유는 오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에겐 약간 김빠지지만, 꽤 합리적이다. 사정인즉슨, 워싱턴 지역이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땅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아무것도 아닌 땅이었기에 의원들의 동의를 얻고서야 수도가 될 수 있었던 워싱턴은 1800년 인구 단 8천명의 작은 도시로 시작한, 철저한 계획도시다. 워싱턴 내 26군데의 공공 도서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중앙도서관인 마틴루터 킹 주니어 기념도서관이다. 시내에 위치한 데다가 모던 건축의 거장 루드비히 미즈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설계한 이 공공 도서관은 명실상부 워싱턴의 랜드마크다. 이곳 못지않은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진,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도서관이 하나 있다. 시내에서 살짝 벗어나 강 둔치의 공원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한낮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전통과 현대의 이야기 모두를 품은 사우스웨스트 도서관Southwest Neighborhood Library을 소개한다.
‘공원 안의 누각’이라는 콘셉트 아래 지어진 사우스웨스트 도서관 외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지붕이다. 공원을 거니는 일반 시민들에게 이리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한 이 지붕은 펼쳐진 책을 형상화한 것이다. 건물 꼭대기에 넓게 드리운 지붕은 주변 나무들과 이어지는 그늘을 만든다. 사선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굵직한 나무 기둥들은 건물의 포용성을 다시금 미적으로 강조하는 듯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이곳이 그저 자연을 향해 있는 정도를 넘어, 바깥 풍광을 완전히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부 공간의 90%에서 녹음을 감상할 수 있게 설계되어서 어디에 앉더라도 자연의 푸르름과 기분 좋은 온기가 맴돈다. 게다가 열람 자리에도 책들이 비치되어 있어 이용자들은 자리에서도 책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을 흠뻑 받아들이는 동시에, 인간의 휴식이 책과 끊김 없이 이어지는 공간의 포용력은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책 누각’ 디자인은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 스타일 건축 양식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으로, 지역의 역사와도 맞닿아있다. 강물과 맞닿아 있는 주거 권역인 워싱턴 사우스웨스트는 1950년대에 대대적인 재개발이 이루어져 몇 개의 기념비적 건물들 외엔 전부 바뀌었다. 이때 새로 지어진 건물에는 아메리칸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미드센추리 모던 양식을 활용한 것이 많았다. 건축에서의 미드센추리 모던은 특히 가옥에 있어서 기하학적이고 미니멀한 윤곽으로 낮게 퍼져 있는 형태, 통창을 통해 뒤뜰의 모습이 집 안, 특히 응접실로 들어오게 만드는 디자인을 특징으로 한다. 앞서 언급한 마틴 루터 킹 기념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미즈 반 데어 로에도 미드센추리 모던 건축의 대표적 인물이다.
사우스웨스트 도서관은 복고풍의 전통 양식을 미적 차원에서만 계승하지 않았다. 퍼킨스앤윌 건축사무소Perkins and Will와 구조공학사 스트럭쳐크래프트StructureCraft는 지역의 역사를 염두에 두면서도 ‘환경친화적 건축’이라는 현대적 문제의식을 결합해 공간을 구상했다. 건물의 전체 뼈대와 연속된 ‘ㅅ’ 자처럼 생긴 지붕을 이루는 판도 접착제나 못이 아닌 나무판을 이용해 결합한 도웰접합 집성판dowel-laminated timber을 이용했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넓은 지붕은 태양열 집열판으로 덮여 있다. 이 패널들을 통해 생산되는 전력량은 연간 16만kWh로 추산되는데, 이는 이 건물의 1년치 에너지 소비 추정량의 49%에달한다. 북쪽의 자연광까지 듬뿍 흡수하는 벽 역시 에너지 절약을 최대화하며, 내부 수도관도 절수에 최적화된 구조로 설치되었다. 이렇듯 환경에 대한 여러 층위의 고민을 바탕으로 세워진 이곳은 미국의 녹색건축위원회에서 지정하는 친환경건축물 인증(LEED)을 받았다.
현대 도서관답게 사우스웨스트 도서관에는 아름다운 서가와 열람 공간은 물론, 주민들을 위한 크고 작은 모임 공간도 충분히 조성되어 있다. 도서관 차원의 모임이나 소소한 이벤트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남녀노소를 불문한 이용자들을 매일 끌어모으고 있다. 미취학 아동을 위한 감각통합놀이, 청소년을 위한 증강현실 게임 모임, 성인 목요 체스 클럽, 심지어 모여서 숙제하는 청소년 모임까지…. 그렇지만 이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주는 가장 큰 기쁨은 뭐니 뭐니 해도, 환경과 기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교육 공간이자 지역의 역사를 담은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그 정체성 자체일 테다. 햇볕 내리쬐는 봄볕 아래 산책 중 잠시 엉덩이 붙이고 쉴 누각, 거기에 책과 이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May22_SpecialReport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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