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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철학의 숲에 숨겨진 성장의 씨앗

글.전지윤

박학다식을 추구했지만 잡학다식이 되어가는 중. 도서관의 장서를 다 읽고 싶다는 투지에 불탔던 어린이. 아직도 다 읽으려면 갈 길이 멀다.


『철학의 숲』
브렌던 오도너휴 지음
허성심 옮김
포레스트북스

『철학의 숲』는 아일랜드의 철학 교육자인 브렌던 오도너휴 Brandan O’Donoghue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펴낸 철학 도서이다. 다양한 생각과 질문을 유도하는 이 책은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이지만, 폴라 맥글로인Paula McGloin의 신비롭고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이 더해져 뜻밖의 재미를 선사한다. 매 이야기의 끝에는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독자가 궁금할 만한 문제에 대해 안내한다. 책의 끝에는 철학자, 경제학자, 작가, 화가 등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변화를 일으킨 이들을 소개한다. 무겁고 따분한 주제라는 철학이 지닌 선입견을 뛰어넘는 유쾌하고 명쾌한 책이다.
오도너휴는 ‘철학 하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윤리적, 민주적 나침반을 갖게 되고 논리와 비판적 사고력, 판단력을 길러 궁극적으로 내적 성장을 이루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국어나 수학과 같은, 소위 주요 과목들의 성적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가치관, 도덕관, 비판적 사고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철학은 그 어느 과목보다 중요하다. 실제 유럽의 많은 나라가 철학과 토론 수업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이전에도 청소년들이 지루하지 않게 철학의 전반을 접할 수 있는 책이 있었다. 바로 1991년 노르웨이에서 발간된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의 『소피의 세계』다. 여느 철학서와 달리 무한한 호기심을 일으켜 철학이란 주제가 어렵고 고리타분한 게 아니라 그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든 책이었다. 『철학의 숲』은 그에 비해 호흡이 짧아 ‘요즘 아이들’에 적합한 입문서라 할 만하고, 우리 사회와 삶 전반에 연결할 수 있는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가치를 갖는다.
아일랜드의 사비나 히긴스Sabina C. Higgins 영부인은 ‘필로소피 아일랜드Philosophy Ireland’라는 청소년 대상 철학 교육 캠페인의 리더로 활동하며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철학의 숲』 추천사에서 “2016년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우리는 철학은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이자, 청소년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교육이라는 데 모두 동의”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세계 철학의 날World’s Philosophy Day 기념 연설에서 아일랜드 대통령 마이클 D. 히긴스Michael D. Higgins는 오늘날 청소년에게 있어 철학 교육의 절박한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기도 했다.
“철학 교육은 어느 때보다 더 복잡하고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있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유로우면서 책임감 있는 주체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젊은 세대가 세계로 향하는 여정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얻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철학에 대한 노출은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판적 능력, 다원주의에 대한 포용성과 철학에 대한 넓은 이해력에 의한 윤리의식을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청년들은 그 여정에서 더욱더 현명한 여행자가 될 것입니다.”_마이클 D. 히긴스, 2016년 11월 19일 연설 중
어린 세대들은 판단의 잣대와 윤리, 양심의 나침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세상에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격변하는 기술발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가치 판단이 이들 앞에 닥치게 될 것이고, 그 결정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부모가 아이 대신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기꺼이 초대장을 내민 철학자들이 따로 있으니, 그들이 초대하는 철학의 숲으로 아이들을 자유롭게 안내하고 마음껏 그 숲을 헤매도록 내버려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