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8

책을 낸 이후의 삶

Editor. 김선주

조용하고 작은 책방에서 책을 계산하며 인사를 건네는 일은 어쩐지 쑥스럽다.
가보고 싶던 독립책방에서 넘치는 친절을 받았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책낸자』 서귤 지음
디자인이음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내 이름이 찍힌 책을 내기만 하면 작가가 되는 걸까? ‘작가’라는 타이틀은 어쩐지 대단한 능력을 함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이야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작가’라는 말이 주는 묘한 위압감은 여전하다. 그래도 자신이 담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독립출판물이 늘어가면서 작가의 문턱이 사뭇 가깝게 느껴진다. 독립출판물 중에 ‘책 같지 않은 책’은 없다. 아무리 부족하고 허술해 보여도 그 가치를 알아보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독자가 되길 자처하고, 책을 낸 이는 자연스레 작가가 된다. 그래서일까. 작은 책방을 가득 메운 각양각색의 책들은 마치 ‘너도 원하면 책을 낼 수 있어’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물론 멋진 일이지만, 그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말하는 책도 있다.
서귤의 『책낸자』는 어느 날 고양이가 3m 크기로 커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독립출판물 『고양이의 크기』를 내기까지의 과정과 일상을 네 컷 만화로 그린 책이다. 소재를 정하고, 원고를 만들고, 인쇄하고, 책방에 유통하기까지 독립출판의 전 과정을 그린, 간단히 말해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내용의 독립출판물인 셈이다. 작가란 자신과는 멀다고만 생각했던 평범한 직장인이 독립출판을 통해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까지 했던 수많은 고민과 만남, 변화가 귀여운 그림을 통해 펼쳐진다. 사실 앞에서 작가니 뭐니 하며 실컷 떠들었지만 이 책은 작가가 되는 법이나 독립출판 예비작가를 위한 꿀팁 뭐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책 낸 자’의 이야기다. 난생처음 자신의 책을 만들어본 이야기. 네 컷 안에서 툭 치고 빠지는 호흡이 너무 절묘해서인지, 특유의 시선과 표현이 재미있어서인지, 내용이 사실적으로 와닿아서인지 금방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고파진다.
어느 날 문득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서귤은 직장생활 틈틈이 독립출판 워크숍을 들으며 짧은 기획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나간다.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사람 일이라는 게 원래 예측 불가능한 일의 연속인지라,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일어나 수정에 수정을 거치고, 고민을 거듭한다. 책을 낸다는 것은 원고를 인쇄소에 보낼 때까지, 아니 어쩌면 독자의 손에 책이 들어갈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뉘기도 바쁜데 책을 내려면 기획부터 제목, 스토리, 그림 등 해야 할 것은 한둘이 아니니, 직장인인 저자는 일을 마친 밤이나 쉬어야 할 주말에 조금씩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몸은 몸대로 고되고,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자신감도 끊임없이 무너지려 한다. “매일 하면 직업이다.” “책을 낸 후에 달라질 삶.” 작가는 책상 위에 붙인 포스트잇 메모를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때로는 달래가며 작업을 이어간다.
책을 낸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일만 하기에도 힘든데 왜 사서 고생이냐고 끝없이 자신에게 되묻고 일갈하지만, 결국 책은 완성되고 서귤은 책 낸 자로 거듭난다. 그래서 책을 낸 이후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까? 글쎄,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전처럼 평범한 나날을 보내며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낸 그녀에게는 워크숍과 책방, 인쇄소의 인연이 남았고, 작가라는 이름이 남았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어주는 독자도 생겼다. ‘책을 내면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그런 뜻이었을까. 적어도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투하여 결국 책을 내고 사랑을 받아본 작가라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결코 이전과 같은 삶일 수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