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5

지하철 산책

Editor. 박소정

『ㅋㅋㅋ』 장주원 지음
문학세계사

직장에 가는 이들도, 직장이 없는 이들도 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움직인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친 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직장에서는 내비칠 수 없는 진실된 얼굴이다. 지하철을 통해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웃음과 공감으로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책이 있다. 하나는 발칙한 상상력이 빛나는 소설 『ㅋㅋㅋ』다. 페이스북에 연재한 69편의 초단편 소설을 한데 모은 것으로 풍자적이고 자조적인 유머가 가득한 것이 큰 특징이다. ‘커리’란 상징물을 통해 한국 종교사회를 풍자한 이야기부터 ‘중간만 가라’는 어머니 말씀대로 중상위 성적으로 중위권 대학을 가고 중견기업에 들어가 중후한 중년이 되고, 어렵사리 중산층이 되었지만 남은 건 우중충한 노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뿐이라는 내용이 웃기면서도 슬픈 우리네 현실을 담아낸다. 또한 산낙지에 빙의한 주인공이 산낙지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제발 산채로 먹는 것만은 피해달라는 내용의 ‘낙권선언’도 기발하다. 또 하나의 책은 『뭐라도 되겠지』다. 농담과 진지함의 사이를 오가며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전하는 에세이다. 단춧구멍이 왜 네 개인지 연구하고, 시끄러운 세상의 볼륨을 줄여줄 인간 음량 조절기가 생겨나길 기도하는 저자의 엉뚱함이 유쾌하다. 한편 저자는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와 같은 풍자 유행어를 돌이켜보며, 우리가 시간이 흘러 철 지난 유행어만 기억하고 정작 기억해야 할 역사를 잊게 되는 건 아닐지 우려하기도 한다. 지옥철로 불리는 지하철에서 무슨 책이냐며 따지는 이들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OO팡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독서 뒤에 느끼는 산책하고 온 듯한 신선한 기분은 덤이다. 책은 두껍지만 가볍다. 그래서 더욱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