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 2020

지금 우리 곁에 반짝

Editor.이주란

『이 별에서의 이별』
양수진 지음
싱긋

스무 살 때 선운사에 갔다가 별을 본 적이 있다. 친구와 밤산책을 나온 길이었다. 나름 시골 출신이라는 약간의 자부심이 있는데, 정말이지 그렇게 밝고 많은 별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수 많은 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졌다. 깜깜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옆에 드러누운 친구가 말했다. 과연, 그렇게 까만 밤하늘도 처음이었다.
『이 별에서의 이별』의 저자 양수진은 에필로그에서는 “밤이 깊을수록 별들이 더욱 선명하게 반짝이듯, 죽음에 대한 명료한 의식이 있을 때 삶 또한 영롱히 드러난다”고, 프롤로그에서는 “죽음을 통해 죽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삶은 더없이 명확해졌다. 어쩌면 삶이라는 시간의 명료함이 죽음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관념적인 죽음을 실재적인 죽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더할 나위 없는 가르침”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이런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례지도사인 저자의 이야기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이야기일 테니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자살과 방화로 인한 죽음, 고독사와 사고사, 병사, 부모의 죽음, 자식의 죽음, 배우자의 죽음 등 저자는 죽음의 여러 모습을 들려준다. 직접 모신 분들의 이야기라 누가 될까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나 역시 조심스럽게 따라 읽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고귀한 가르침이 내게도 와서 닿았다. 40대 여성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수의를 입은 그녀 곁에 남편과 아들이 서 있다. 그는 조용히 아내에게 다가가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하며 말한다.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자는 전조증상 없이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고 하는데, 글을 읽던 나도 그랬다. 어쩌면 신문에서 볼 법한 일 같지만 이 이야기는 진짜이고, 그래서 나는, 읽다가 여러 번 숨을 골라야 했다.
나는 삶이나 죽음에 관해서라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내가 지금 살아있고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회피하며 살았다. 그랬어도 큰 문제없이 살 수 있었고 꽤 오랜 시간 “주란이는 정말 쿨하다”며 성격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는 그게 나의 비겁함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았지만 들킬 일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비겁하다고 스스로 고백을 해도 “웃기지마, 너 쿨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쿨하다거나 성격 좋다는 말은 못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스스로 성격이 좋아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하하. 나는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거의 매 순간) 의식하고 전보다 자주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을 뻔한 그날 이후로.
그 일이 나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그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몰랐겠지, 멀쩡히 출근을 하고 밥을 (많이) 먹고 하니까. 다만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냥 넘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마음은 전에 없던 다정함으로 채워졌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조차 모두 소중해 보였을 정도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이 있기는 했다. 엄마로부터 “갑자기 이러니 무섭다”라는 말을 듣는다거나 보도블록 사이로 자라난 새싹들을 밟지 않으려 (거의) 발가락만으로 걷다가 결국 앞으로 고꾸라져 버린다거나 하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무뎌져 자괴감을 느낄 때에도 사랑만은 남아있었다. 내 곁에는 “이쪽은 괜찮으니 내 쪽으로 와”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깜깜할 때 별을 보며 걷는 사람처럼 그들을 따라 걸었다. 여전히 이별은 힘들고 싫지만, 그렇게 다정히 지내온 시간이 사랑하는 마음을 남겨주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것이 내 삶의 거의 전부라는 것도.
삶만 생각하다가 죽음으로부터 나를 제외할 때가 있다. 그럴때 나는 조금 흐트러지는 것 같아 책장에서 『이 별에서의 이별』을 다시 꺼내 읽는다. 그러면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별들이 밤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낮에도 보이는, 그러니까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언젠가 사라질 각자의 삶은 모두 한 번씩은 빛났을 테고, 혹여 보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무려 예쁘게 빛나고 있을 테니까. 허무한 듯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임수연 작가의 만화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