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hop & the City 세상의 모든 책방

제주에 가면

에디터: 최남연,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제주 특집호를 위해 책(Chaeg) 팀은 모두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 각지로 흩어져 이곳저곳을 취재했는데, 그중에서도 책방만을 돌아다니는 호사를 누린 에디터가 직접 보고 듣고 온 제주 책방 이야기를 전한다. 책방지기의 취향이 묻어나는 개성 넘치는 공간들을 지금부터 소개하니 잠시 눈을 감고 함께 제주로 떠나보자. 책과 책방을 찾는 사람, 무엇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한껏 느껴볼 수 있을 테니! 아, 또 가고 싶다!

캔북스 Canvooks
제주는 물론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미술 전문 서점이 제주시청 아래 이도동에 있다. 서양화가 이행석 작가와 아내 안소희 작가가 함께 운영하는 화방 겸 책방 캔북스다. 둘은 모두 제주 출신으로, 유학 생활 후 제주로 돌아와 책방을 열었다. ‘캔버스’와 ‘북’ 을 합쳐 이름 붙인 캔북스에는 미술사나 예술에 관한 단행본도 있지만, 대부분 화집이나 사진집 등 아트 서적이다. 프리다 칼로, 데이비드 호크니, 피카소나 클림트처럼 이미 유명한 작가뿐만 아니라 아직은 이름이 낯선 신예 작가의 작품집도 소개하는데, 최신 흐름까지 아우르며 시대와 발맞추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책방 안쪽은 부부의 작업실 겸 수업 공간으로 이행석 작가는 미술사 스터디, 안소희 작가는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책방을 꾸려나간다. 한눈팔지 않고 순수 회화만 소개하는 전문 서점으로 오래오래 자리를 지켜나가고 싶다는 것이 두 책방지기의 바람이다.

시와 그림책 Poem and Picture Book
바닷가를 바로 앞에 둔 마을인 조천리, 옹기종기 모인 집들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작은 나무 대문 뒤로 조용히 자리 잡은 새하얀 책방을 만날 수 있다. 2017년 7월 문을 연 이곳은 책방지기가 가장 좋아하는 두 장르인 시와 그림책만을 다룬다. 지인들과 함께 가정집을 개조했는데, 이곳에 오는 손님들도 시와 그림책을 충분히 즐기다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꾸몄다. 흰색 벽과 바닥에 나무로 된 가구만을 놓아 따듯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책방에 가져다 놓는 책 역시 자신이 좋아하고 더 많은 이와 함께 나누고 싶은 책들로 고른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그림책의 매력을 전하고, 그림책을 보러 온 독자에게 시의 매력을 선물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책방지기가 여행하며 직접 구입하거나 현지에 머무는 지인에게 부탁해 들여오는 원서도 많다. 매주 토요일 밤 함께 시를 읽는 ‘시 읽는 밤’, 시 창작 워크숍, 그림책 만들기 등 여러 행사도 열린다.

북스페이스 곰곰 Bookspace Gomgom
이름대로 책과 공간을 함께 제공하는 책방이다. 2시간에 4천 원, 이후로 시간당 2천 원인 이용료를 내면 무료 음료 1잔에 책을 마음껏 읽다 갈 수 있다. 통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소파 자리가 명당. 또, 높은 책꽂이 뒤로 난 계단을 오르면 아이들을 위한 다락방이 나오는데, 책걸상이 아닌 빈백beanbag을 여러 개 놓아 자유롭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책방지기는 어린이책 분야 편집자로 10년 가까이 근무했으며 직접 책을 쓰기도 했다. 덕분에 이곳에는 일반 도서뿐만 아니라 어린이책, 그림책도 많다. 어린이책은 특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들로 골라 들여오는데, 책방 이름도 곰곰이 생각한다는 표현에서 따왔다. 6~8명 정도를 수용하는 세미나실도 2개 있어 수학, 외국어, 미술 치료, 어린이 논술 등 다양한 수업도 열린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기는 마을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책방지기의 소망. 넓은 주차공간과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앞마당은 덤이다.

미래책방 Mirai Books
옛 제주 도청 격인 제주목 관아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하얀 타일
이 깔린 조그만 골목 초입에 미래책방이 있다. 원래 있던 ‘수화식당’의 간판은 떼려고 보니 지붕 공사까지 같이해야 해서 그냥 뒀다는데 지금은 이곳의 시그니처가 됐다. 책방 바닥의 파란 타일과 천장 역시 원래 쓰던 것이다. 이처럼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미래책방에서는 우리의 미래와 앞일을 ‘사서’ 걱정하는 책방지기의 고민이 담긴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생활, 환경, 주거, 기술, 여성 등을 주제로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비치했으며 이외에도 미래책방 로고가 담긴 배지, 책갈피, 엽서 등 굿즈도 판매하니 여행객이라면 기념품 삼기 좋다. 또, 책방 왼쪽 작은 공간에는 책방지기의 지인이 운영하는 ‘구석 카메라’가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 필름 등을 판매하며 수리나 클리닝 서비스도 제공한다. 운이 좋다면 이곳을 든든히 지키는 두 고양이 ‘무리’와 ‘짬뽕’을 만나볼 수 있는데, 책방 안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하고 있으니 고양이들과는 눈으로만 인사하자.

감귤서점 Gamgyul Bookstore
『진짜 기본 요리책』 『수퍼레시피』 등 요리책과 잡지 200여권을 만들어 온 출판사 레시피팩토리에서 운영하는 책방으로 지난해 9월 문 열었다. 월정리 해변 뒤편으로 난 골목을 따라 쭉 올라가다 언덕이 끝나는 지점쯤 위치한 노란 지붕이 바로 감귤서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다양한 독자를 만날 수 있어 제주에 책방을 냈다고 한다. 요리책 추천이나 요리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이 필요하다면 요리 전문 서점인 이곳을 찾아보길. 쿠킹클래스도 진행하는데 지금은 잠시 신청을 받지 않는다. 메뉴를 추가하고 난이도도 여러 단계로 나누는 등 재정비를 거쳐 현재 준비 중인 2호점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감귤서점에서는 레시피팩토리의 요리책, 잡지뿐만 아니라 품절된 과월호도 만나볼 수 있고 에코백, 머그잔, 레시피 엽서 등 직접 만든 굿즈도 판매한다. 책방에서 바로 구워 내놓는 스콘과 제주 감귤 주스, 감귤 홍차도 별미이니 간식 삼아 즐겨보길 권한다.

달빛서림 Moonlight Book Forest
비자림로와 금백조로 근처 한 도로에 얼핏 보면 책방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만큼 조그만 간판을 단 연두색 가게가 있다. 2011년 월정리의 한 카페에서 책 몇 권을 가져다 놓고 시작해, 강정마을에 있다가 3년 전 지금 위치로 옮겨 온 달빛서림이다. 책방지기 김키미가 운영하는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책은 환경, 평화, 인권, 제주에 대한 것들로 모두 그가 읽었거나 읽고 싶은 책들이다. 또, 버려진 빨대를 씻어 만든 파우치, 생분해 비닐, 면 손수건 등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여러 대체 용품 및 공정무역 제품, 유기농 제품도 소개한다. 직접 판화로 작업한 포스터, 그림, 엽서도 판매하는데, 과일 껍질로 만든 종이에 그리고 버려진 비닐로 포장했다. 요즘 책방지기는 책방 문을 열기 전 비자림로 숲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중이다. 이 때문에 제시간에 책방 문을 못 열 때도 있으니, 주인장을 꼭 만나고 싶다면 숲으로 오면 된다고 한다.

보배책방 Bobae Books
앞으로는 연못, 뒤로는 밭이 펼쳐져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인 애월읍 하가리 연화못 맞은편, 하얀 건물 한편에 책방이 들어섰다. 올해 3월 문을 연 보배책방이다. 더럭초등학교 부근에 자리 잡은 만큼 오가는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책도 많고, 단행본으로는 주로 인문, 문학, 예술, 사회 분야 책을 소개한다. 책방지기는 여러 출판사에서 기획, 편집일을 22년간 하다 제주에 내려왔다. 덕분에 인연을 맺었던 출판사에서 저자 사인본이나 굿즈를 십시일반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보배책방은 ‘느리게, 함께, 까칠하게’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꼭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호흡으로 천천히 읽어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때로는 까칠하게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책을 가운데 놓고 함께 대화하고 싶어 책방을 열었다는 주인장의 소망대로 이곳에서는 매달 책 한 권을 선정해 같이 읽는 독서 모임 ‘보배살롱’과 저자 초청 북토크 등이 열린다. 앞으로는 낭독이나 쓰기 모임도 진행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책다방 Book Dabang
월정리 해변 뒷골목을 걷다 보면 돌담 너머에 자리 잡은 책다방이 보인다. 책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익숙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분위기를 돋우는 오래된 LP판, 이불장, 옛날 전화기나 카메라 등은 모두 빈티지 소품을 좋아하는 책방지기의 물건들이다. 책다방 이용료는 1인당 7천 원으로, 시간제한은 없고 음료 1잔이 포함된 값이다. 손잡이가 달린 예쁜 유리병에 나오는 당근 우유, 말차 우유, 홍차 우유, 커피 우유 등이 인기 메뉴. 책은 신간 위주로 소개하기보다 그때그때 시기에 어울리는 책, 책방지기의 눈에 띄는 책, 오래되었더라도 다시 볼만한 책, 자존감 충전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로 골라 들여온다. 또, 세 고양이 밀, 가방이, 다방이와 함께하고 있는 만큼 고양이 관련 책이나 고양이 모양 굿즈도 많다. 가방이, 다방이는 주말이면 책방에 나와 손님을 맞는다. “배움에 대한 애정과 세상을 등진 외딴곳, 책이 주는 그 모든 달콤한 평온.”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한 시인의 말이다. 책다방에는 여기에서 ‘책’을 ‘책다방’으로 바꾼 글귀가 한쪽 벽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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