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저절로 붉어질 리 없는 삶

에디터. 전지윤 사진제공. © 몽스북, © 열매문고

여기 아주 다른 두 사람이 있다. 경솔한 줄 알면서도 속계의외적 구분을 적용한다면, 한 사람은 화려하고 다른 한 사람은 소박하다. 두부를 반듯하게 반으로 자르듯 두 사람을 감히 나눠본다면 말이다. 이들이 각각 펴낸 수필집도 굳이 구분하면 이렇다. 한 사람은 오렌지맛 환타처럼 쨍한 배경색에 히비스커스 꽃을, 다른 한 사람은 하얀 눈밭에 남긴 발자국을 돌아보는 아이 사진을 책 표지에 담았다. 그러나 현재 살고 있는 장소와 나고 자란 이력도 모두 다른 두 사람은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40대 여성이고, 부모님의 딸이자 남편의 배우자이며 아이의 엄마라는 점. 그리고 이런 여러 역할들을 수행하면서도 뚜렷한 주관과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속도를 지키며 살아가려 한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 또 한 명의 40대 여성이자 부모님의 딸, 남편의 배우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나는 우연히 나와 같은 듯 다른 그녀들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신변잡기를 하고, 서로의 감상과 생각을 댓글로 쉽게 나눌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소소한 일상과 가족사 등 개인사를 빚어내는 수필집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을뿐더러, 괜히 남의 이야기에 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권의 수필집에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머쓱하게도, 장을 넘기다 보니 그들이 사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못생긴 얼굴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새 나는 그들의 열렬한 팬이 되어 있었다. 나를 이렇게 마구 흔들어 놓다니, 역시 진심은 힘이 세다.
『소소하게 찬란하게』의 오지영은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소박한 담벼락에 핀, 누가 봐도 화려한 히비스커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델이어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돌 아보게 할 만큼 예쁘다. 그녀가 유쾌하게 풀어놓은 아롱다롱한 추억은 아카시아와 사루비아 끝을 쪽쪽 빨아먹는 듯 달달하다. 마치 예전엔 비싸고 귀했던 바나나를 이제는 매일 먹으니 신나 서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 웃는 양 만면에 즐거운 얼굴을 머금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미소를 지어보여도 돌아가신 할머니와 부모님과의 추억을 들려줄 땐 만약 내가 그 옆에 있었다 면 부둥켜 안았을 기세로 책을 잡고 우느라 눈물 콧물을 쏙 뺐다. 한편 행여 잊어버릴까 꼼꼼히 써내려 갔을, 자신의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속마음과 앞으로 마주할 삶의 지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애틋하다.
“햇살을 받으며 걷는 일이 행복하고/ 친구와 함께 나눠 먹는 점심이 행복하고/ 어제 남편과 싸웠는데 오늘 아침 얼굴을 보니 웃음이 터져 행복하고/ 아이가 나를 안아줘서 행복하고/ 오늘 저녁 된장찌개 끓는 소리에 행복할 테고/ 아직도 읽을 책이 한가득이라 행복하다./ 이런 일들로 조금씩 행복한 내가 염치 불구하고 싶지는 않다.”
제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환경에 살고 대단한 경력을 가졌어도 사람의 생은 보편적 희로애락으로 뒤엉켜 있었다. 오지영은 감히 진리라 부를 만한 이 생의 법칙들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임은 깨달음과 행복을 생의 가운데로 가져다 놓았으며, 이를 깨달은 그녀는 삶의 소소한 찬란함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충분히 아름답고 찬란한 내 삶을 복기해보았다. 책을 움켜쥐고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는 나를 보고 ‘도대체 뭘 읽는 것이냐’며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티슈를 갖다 주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남편이 있고, 몸서리치게 새를 무서워하는 엄마를 보호해 주겠다고 고사리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며 괜찮다고 다독이는 작지만 큰 아이가 있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풍동면과 풍남면을 합쳐 ‘무성할 무(茂)’에 ‘풍성할 풍(豊)’자를 쓰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무풍면(茂豊面). 『무풍생활』을 쓴 작가 이후는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글쓴이는 봄 햇살에 노랗게 핀 작은 수선화 같다. 큰 얼굴의 수선화처럼 눈에 띄는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따스한 봄날을 그 누구보다 순전하고 감사하게 맞이하는 얼굴이랄까. 무풍에서의 기록을 들려주는 그녀는 담백하고 용감하지만 그 어떤 화초보다 섬세하다. 곧이곧대로 사실을 말하는 그의 솔직함이 글에도 어찌나 그대로 드러나는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를 넘어 ‘이 사람 참’ 하고 너털웃음이 나게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뭉근하게 진심이 통하는 사이가 된다면 누구보다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일 것이 분명하니 그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테다.
“농사 지어서 여기저기 나눠주다 보면 웃지 못할 일이 생긴다. 몇 해 전, 약 안치고 비료 안 주고 기른 유기농 배추랍시고 여기저기 보냈었다. 그런데 이태가 지난 후에 느닷없이 배추 맛이 없었다는 고백을 듣질 않나 심지어 그 배추로 담근 김치가 되돌아오는 일도 당했다. 이유인즉 배추가 너무 질겼다는 것. (…)약 안 치고 비료 안 준 배추는 (…) 모질게 살아남은 아이들이라 생명력이 강하다. 웬만큼 소금을 뿌려도 숨이 잘 죽지 않고, 김치를 절여 놓아도 잘 쉬지 않는다. 그러니 입에 익숙지 않을 수 밖에. (…) 남편은 7년 차, 나는 5년 차 밭 농사인데도 우리의 농사는 이렇게 늘 실험과 실패의 연속이다.”
『무풍생활』의 글쓴이 이후는 직장생활 10년차에 이런저런 이유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자연스러운 삶이 무엇인지 궁금하고 그리워, 대책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려고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대개 이런 책들은 삭막한 도시 생활에 찌든 당신은 모를 자연친화적 삶의 가치로움과 아름다움을 내세운다. 읽다 보면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삶이 아름답긴 하지만 결국 ‘아 무래도 나는 도시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며 뭇 도시인은 죄스러움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후가 기록한 삶은 성공한 귀농 생활,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단순한 시골, 또는 자연을 영위하는 눈부신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도시의 삶을 무작정 등진 뒤 수년간 시골 생활을 하며 이전에 가졌던 어떤 환상을 벗어내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March21_Inside-Chaeg_02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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