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작은 씨앗이 뿌리내리는 마법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도서출판 서내

“인류는 항상 탐험가였습니다. 위대한 탐험가들에 대한 기록은 여전히 우리에게 모험심을 불어넣으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작은 존재가 전하는 큰 울림
동네 뒷산을 걷다보면 사방으로 우두두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발견하면 아이는 한바탕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그 웃음을 보면 엄마인 나도 웃음을 감출 길이 없다. 다람쥐처럼 바삐 돌아다니며 도토리를 주워 쟁여 놓는 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다 문득 고개를 젖혀 도토리나무를 올려다본 적이 있다. 잎사귀도 크고 화려한 것이 꼭 그려보고 싶을 만큼 예쁘게 생겼고, 언제 어떻게 저렇게 자랐을까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쭉 뻗은 몸통은 질투가 날 만큼 곧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크고 둥근 나무에게서 얼핏 세상 사는 순리가 다 보이는 것 같다. 캄캄한 땅속에 묻혀 굳건하게 자라 푸른 숲을 이루기까지, 작은 씨앗이 아름답게 늙은 나무가 되기까지 겪었을 숱한 고난을 짐작해보면 이보다 놀라운 기적이 어디 있으랴 싶다.
처음에 나는 작고 동그란 도토리였어요.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떨어져서 땅 속에 묻혔지요.
그러다가 나는 자라기 시작했어요. 무려 수백 년 동안 말이죠.
그렇게 나는 나무가 되었답니다.
그동안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어요.

수백 년이나 자란 나무가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다는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나무는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마치 드론이 하늘 높이 떠서 산림 공원의 전경을 내려다보듯 멋진 풍경만 보며 살았을까? 나무의 성장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천천히 자라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나무의 자리는 들판이 되고 마을이 되었다. 그나마 제자리를 지킬 수 있던 나무는 밑동만 남은 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나무는 늙어갔고 점차 나이테가 생기며 몸통은 굵어졌다. 그 사이 사람들은 또 다시 나무를 베고 땅을 파헤쳐 씨앗을 뿌리고 농작물을 수확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오랜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낸 나무의 시간은 사람들이 쉽게 휘두른 도끼질 한 번에 댕강 잘려 나갔다. 나무의 삶만 훼손된 건 아니었다. 다람쥐와 새, 곤충 등 산속에 살던 친구들은 한순간에 집을 잃었다. 황망히 잘려 나가는 나무를 내려다보며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슬퍼서 더 아름다운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에 펼쳐지는 영국의 목가적인 풍경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글을 쓴 샤를로트 길랑과 그림을 그린 샘 어셔 두 사람 모두 옥스포드셔와 소머셋에 거주하
는 영국인이기 때문에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영국에 살 적 우리 아이와 나는 날씨가 좋던 어느 날, 물병과 빵을 담은 배낭을 메고 우거진 숲으로 나간 적이 있다.
우리 눈앞에 펼쳐졌던 풍경이 책의 장면마다 고스란히 녹아 있어 추억 여행이라도 하는 양 무척 신이 났다. 아이도 나도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그때의 초록 풍경을 꼭 빼닮은 아름다움을
이 책으로 다시금 만끽할 수 있었다. 작은 도토리 씨앗이 참나무로 자라는 시간과 인간의 등장으로 울창했던 나무들이 베어지고 황폐하게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은 사실적이고 참담하다. 그럼에도 참나무는 다정한 어투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 맑고 따뜻한 그의 시선을 공유한다. 마침내 거의 모든 나무가 베어졌을 때 단풍이 든 낙엽이 흩날리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저자 샤를로트 길랑은 자신을 아무 나라 사람도 아니라고 소개한다. 여러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이란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북 셀러, 에디터로 일했고 외국인 관제사와 간호사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길랑은 어린이를 위한 픽션과 논픽션을 백여 권 넘게 쓴 다작 작가다. 특히 그의 『예티와 스파게티 먹기』는 로알드 달 퍼니 프라이즈The Roald Dahl
Funny Prize를 포함한 아홉 개 상에 후보로 오른 바 있다. 길랑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다정함은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에 특히 잘 녹아들어있다.
이 책의 일러스트는 제2의 존 버닝햄이라는 찬사를 받는 샘어셔가 맡았다. 어셔는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워터스톤즈 상, 레드하우스 어린이책 상, 케이트 그린어웨이 메달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실력자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 어셔의 책들은 대부분 자연 현상에 관련된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를 다룬다. 맑고 따뜻한 색감의 수채화가 참나무가 바라보는 풍경을 더 사랑스럽게 느끼게 하고, 인물과 동물들의 표정에서 공감을 자아내도록 한다.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선사하는 힘을 이 책은 가지고 있다.
작은 존재가 전하는 큰 울림
동네 뒷산을 걷다보면 사방으로 우두두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발견하면 아이는 한바탕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그 웃음을 보면 엄마인 나도 웃음을 감출 길이 없다. 다람쥐처럼 바삐 돌아다니며 도토리를 주워 쟁여 놓는 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다 문득 고개를 젖혀 도토리나무를 올려다본 적이 있다. 잎사귀도 크고 화려한 것이 꼭 그려보고 싶을 만큼 예쁘게 생겼고, 언제 어떻게 저렇게 자랐을까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쭉 뻗은 몸통은 질투가 날 만큼 곧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크고 둥근 나무에게서 얼핏 세상 사는 순리가 다 보이는 것 같다. 캄캄한 땅속에 묻혀 굳건하게 자라 푸른 숲을 이루기까지, 작은 씨앗이 아름답게 늙은 나무가 되기까지 겪었을 숱한 고난을 짐작해보면 이보다 놀라운 기적이 어디 있으랴 싶다.
처음에 나는 작고 동그란 도토리였어요.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떨어져서 땅 속에 묻혔지요.
그러다가 나는 자라기 시작했어요. 무려 수백 년 동안 말이죠.
그렇게 나는 나무가 되었답니다.
그동안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어요.

수백 년이나 자란 나무가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다는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나무는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마치 드론이 하늘 높이 떠서 산림 공원의 전경을 내려다보듯 멋진 풍경만 보며 살았을까? 나무의 성장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천천히 자라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나무의 자리는 들판이 되고 마을이 되었다. 그나마 제자리를 지킬 수 있던 나무는 밑동만 남은 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나무는 늙어갔고 점차 나이테가 생기며 몸통은 굵어졌다. 그 사이 사람들은 또 다시 나무를 베고 땅을 파헤쳐 씨앗을 뿌리고 농작물을 수확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오랜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낸 나무의 시간은 사람들이 쉽게 휘두른 도끼질 한 번에 댕강 잘려 나갔다. 나무의 삶만 훼손된 건 아니었다. 다람쥐와 새, 곤충 등 산속에 살던 친구들은 한순간에 집을 잃었다. 황망히 잘려 나가는 나무를 내려다보며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미안한 만큼, 고마운 만큼
내가 아주 어린 나무였을 때,
나무껍질은 여전히 자라는 중이었어요.
내 주변에 많은 어린 나무들이 경쟁하듯이 자라나
우리는 거대한 공원을 가득 채우게 되었어요. (…)
몇 년 동안 나는 더 크게 자랐어요.
내 뿌리는 땅속 여기저기로 뻗어 나갔어요.
나뭇가지는 두꺼워지고, 더 높이 뻗어 나갔어요.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에서 작고 동그란 도토리나무는 아무 도움 없이 홀로 쉬지 않고 뻗어 나간다. 그러나 열심히 자란 나무들은 사람의 손에 의해 너무도 쉽게 사라진다. 자
꾸 문제를 일으키면서 쉬이 달라지지도 않고 자연을 할퀴기 바쁜 인간은 이제 자연으로부터의 반작용을 마주하고 있다. 이 책의 참나무가 대변하는 자연은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에게 가장 엄중한 경고를 전한다. 이제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듬어 달라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도, 남은 것조차도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의 기운을 입고 피어나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자연. 이 기특한 녀석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보다 더 진한 말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기회가 아직 있는지도 모른다. 손톱만 한 도토리 씨앗이 풍성한 참나무로 자라날 약속과 가능성을 품고 있듯이 말이다.
나는 매년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게서 오래된 나뭇잎이 떨어지고 새로운 도토리가 생기는 것을 느꼈지요.

January21_TailofTales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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