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작은 마을의 밝은 거실 비비 도서관과 문화의 집

에디터. 김경란 사진. © Niels Nygaard 자료제공. Christensen & Co Architects

간결한 만듦새와 환경을 생각해 선택한 원목 소재 등 북유럽 제품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요소들은 1950~1960년대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서 번성한 디자인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지속성과 단순함을 겸비하기로 알려진 북유럽 디자인은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여기서 특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능성은 덴마크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건축이나 산업디자인에서 건물·사물의 본래 목적에 충실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기능주의는 덴마크에서 196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외형에만 치중하지 않고 지속 가능성과 사용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신은 오늘날 덴마크 디자인 철학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은 사물뿐만 아니라 건축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지역 사회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도서관의 설계에서 특히 도드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중 하나인 비비 도서관은 매력적인 디자인을 보유한 것은 물론, 지역에서 여러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기능적인 복합문화공간이다.
비비 쉬랜드Viby Sjælland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과 인근 대도시인 로스킬레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거주하는 위성 도시이다. 올해 1월 기준 4,733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마을에 들어선 비비 도서관은 방문객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소통하는 ‘마을의 거실’이 되려는 취지로 지어졌다. 흰 타일로 덮인 건물 외관은 안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시선을 끈다. 자칫 차갑거나 조금 과하게 청결해 보일 수 있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면 경사진 지붕 둘로 이루어진 박공지붕 세 개가 나란히 이어져 있어 꼭 서로 다른 세개의 삼각형이 손을 맞잡은 듯 위트를 자아낸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타일 사이로 새어 나오는 주황빛의 조명 또한 건물에 온기를 더한다. 이러한 건물 외관 디자인은 부지의 역사를 담아 설계되었다. 과거 이 자리에 서 있었던 낙농 공장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주변 건물들과 어울리도록 구현한 것이다. 흰 타일 역시 공장 내부에 쓰였던 타일을 연상하도록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 타일이라는 기본적인 재료, 뾰족한 지붕 세 개가 그리는 간결한 모양, 깨끗한 흰색. 정말이지 단순한 요소로 이루어진 디자인이지만, 최소한의 기교와 재료로 작은 마을의 역사를 건축적으로 기념하고 기록하려는 태도에서 덴마크의 오랜 디자인 철학이 엿보인다.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약 1,400m2의 건물은 도서관의 역할을 넘어 마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위해 구획되어 있다. 지상층에는 시민 행정 서비스를 위한 사무실들이 자리하고 있어 일종의 주민센터와 카페, 그리고 공연·강연이나 워크숍이 열리는 다목적실 ‘플렉스 룸’이 있다. 건물의 중앙 입구로 들어섰을 때 제일 안쪽에 있는 플렉스 룸은 천장이 트인 높은 층고의 공간으로, 유리문을 통해 야외 정원으로 이어지게 개방되어 있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카페 역시 야외로 나가는 문이 있으며, 건물 뒤쪽인 이 야외 공간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 햇살 아래에서 독서를 하거나, 작은 숲과 광장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비비 도서관은 ‘문화의 집’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음악과 연극은 물론 여러 가지 예술 활동을 위한 공간을 보유하고 있고, 다양한 연령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문화를 자유로이 접하고 즐길 공간들 또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층 가운데에 놓인 계단을 오르면 2층에 있는 도서관의 서가와 열람 구역이 드러난다. 이 도서관은 문이나 벽으로 구분되는 공간 없이 모두 연결된 개방형으로, 여러 구역을 유기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부분적으로 아래층이 보이도록 트인 곳들이 있어 답답함을 해소해줌과 동시에 아래층에서 전해오는 사람들의 소리와 움직임 덕분에 건물 내의 활발함을 느끼게 한다. 2층 벽에 짜인 서가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을 살피다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노라면, 머리 위 지붕의 모서리를 따라 기다랗게 이어진 좁은 창에서 자연광이 드리우고, 하얀 타일벽에 반사된 빛은 벽에 고정된 조명과 함께 도서관 내부를 은은하게 비춰 집중력을 향상해준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위한서가 모두 마을의 역사 기록 보관소 주변에 배치되어 자신이 머무는 지역의 깊은 역사에 푹 빠져 보기에도 좋다.
비비 마을 주민들은 도서 대여뿐만 아니라 주민센터에 방문하거나 역사 공부, 워크숍, 콘서트 등 다양한 이유로 도서관을 방문하며 동네 사람들과 교류하고 여러 경험을 즐긴다. 비비의 적은 인구, 예산과 효율성을 따지자면 더욱 큰 도서관, 공연센터나 주민센터를 따로 짓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비비 도서관은 이러한 시설들 각각에 적합한 기능적인 공간들을 결합해 덴마크 디자인만의 단순한 철학으로 다듬어진 복합문화공간을 이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밝은 거실이 되어.
November22_SpecialReport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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