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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6

작은 게 좋아

Editor. 유대란

몸에 나쁘고 후회가 예정된 일들에 투신한다.
소독차를 보면 쫓아가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위스키에 나물 안주를 먹을 때 행복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지음, 문학사상
『에키벤』 하야세 준 지음, 에이케이

일본의 많은 걸 좋아하는 나로서 양국 간 사이가 좋지 못한 게 애석하다. 1990년대처럼 명동의 뒷골목을 뒤져 현지 가격의 약 두 배 되는 금액에 『논노』나 엑스재팬의 브로마이드를 구하던 그런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일본을 좋아하기엔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일단 정치와 문화적 취향의 불일치에서 오는 껄끄러움을 잠시 잊고, 일본의 좋아하는 걸 꼽는다면 음악, 문학, 애니, 영화, 음식이다. (순서는 순위와 상관없다.)
마지막 도쿄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열거하자면 모두 음식과 관련이 있다. 그중에는 쓰키지 시장에서 생선 초밥을 먹고 눈이 번쩍 뜨였던 순간, 유럽 취향의 인테리어를 따라 한 아사쿠사의 오래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양식’ 문화를 향한 그네와 우리의 비슷한 열망을 곱씹던 시간, 긴자의 직장인들과 기다린 바에 나란히 앉아 뜨거운 교자에 맥주를 마시던 저녁이 있다. 백미는 도시락이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지하에서 도시락을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왔을 때 ‘행복은 결국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보석함의 묵직한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듯 도시락을 개봉했다. 그건 그냥 도시락이 아니라 용기에 담긴 풍경이었다. 표고와 호두를 넣고 지은 밥이 큰 지형을 형성하고, 그 위에 얹어진 생선이나 육류 반찬이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형형색색의 쓰케모노, 연어알, 달걀부침, 죽순 등이 작은 꽃을 이루는 작은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도시락을 먹을 때 ‘어쩜 이래?’라는 감탄사 외에는 많은 말이 오가지 않았다. ‘어쩜 이래?’는 ‘어쩜 이렇게 작고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맛있을까?’라는 뜻이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나는 일본의 쥘부채, 하이쿠, 색종이 인형 같은 것을 떠올렸다. 적절한 생략과 집요한 압축을 통해 작고 단순해진 것들이었다.
가히 넓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런대로 다채로운 인간 관계의 경계 안에서 둘러봤을 때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작고 집요한 것에 대한 한 가지 이상의 공통된 취미를 보여준다. 캐릭터 피규어를 비롯한 세상 만물의 미니어처에 대한 애호, ‘이게 드라마가 돼?’라는 반응을 유발하는 극단적으로 미시화된 소재의 영화, 드라마에 대한 관심, 그리고 거대하고 위대한 것보다 잡동사니 더미에서 빈 성냥갑, 껌종이, 병따개 등을 발견하는 걸 더 즐거워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이지 그렇다.
이 역시 사소하고 미시적인 관찰이지만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를 접하고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었는데, 그는 1982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된 후 베스트셀러가 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의 ‘좁고 작은 것’에 대한 지향을 논증했다. 그는 자연물, 산업, 사회, 문화, 신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축소 문화를 탐구하고 실례를 들어 그 유형을 설명했다. 논거에는 에키벤도 등장한다.
“우리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은 거기에 담긴 음식 맛보다도 밥상을 보다 작은 상자로 축소하여 가동적인 음식으로 만든 일본인의 발상법이며, 그 기능적인 구조일 것이다.”
그날 백화점에서 산 도시락 중에는 에키벤의 이름을 단 것도 있었다. 에키벤(えきべん)은 철도 여행과 맞물린 특수한 문화상품이다. ‘역이나 차내에서 파는 도시락’을 뜻하는 에키벤은 1970년대 말 조사에 따르면 1,800종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00종이 넘고, 일본 관광 안내서에 등장할 뿐 아니라 일본 전역의 도시락 지도도 있다. 에키벤은 지역의 특산물, 전통과 정체성을 담는다. 여행 시 이동 중 터미널에서 먹는 즉석 우동, 갓 나온 호두과자도 사랑스럽지만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없는 한편, 지방의 역사, 감각을 축소해놓은 에키벤은 여행의 목적, 또는 목적지 자체로 통한다(먹힌다).
이를 소재로 한 『에키벤』은 에키벤 탐험을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절한 아내가 선물한 전국일주 기차표를 들고 여행길에 오른 다이스케는 도시락집 사장이자 철도 마니아로서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 규슈, 시코쿠, 간사이, 홋카이도 등을 기차로 여행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철도의 기종, 역사, 노선과 거기에 얽힌 에키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키벤은 여정의 벗이다. 다이스케는 역별 유명 에키벤에 얽힌 썰을 두루 풀어 보이며 독자를 기쁘고 배고프게 한다. 그것은 식도락 여행기를 넘어 한 단계 좁혀 들여가 확대해본 일본 문화에 대한 각론이다. 이 또한 자체로 매우 ‘축소지향적인’.
올겨울 예정된 일본 여행도 ‘축소지향적’ 여행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주제는 고민 중이다. ‘1980년대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에도시대 문학가의 산책로’ ‘긴자의 오므라이스’ ‘술’ ‘후지 필름카메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