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6

자유의지를 애도하며

Editor. 신사랑

해부학 책과 수술 동영상을 즐겨보는, 외과 의사가 꿈인 예술철학 전공자.
스타트렉이 스타워즈보다 백 배 우월하다고 믿는 SF마니아.
단, 커크 함장의 존재는 페더레이션에 누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뇌다』 디크 스왑 지음
열린책들

몇 년 전 샘 해리스가 『자유의지』라는 책을 출판하고 그에 대해 강의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한 시간 정도의 짧은 강의였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새로우면서도 설득력 강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바로 그 책을 사서 읽었다. 하지만 강의를 들었을 때보다 나의 마음엔 질문이 더 늘어났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특히 어디까지가 자유의지라고 말할 수 있는 정확한 경계선인지가 더 불확실하게 느껴졌다. 나아가 자유의지를 내·외부적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때, 해리스는 우리에겐 자유의지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내용이 이론적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그렇다면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무력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딜레마도 느껴졌다. 『자유의지』는 결코 난해한 내용의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간결하고 쉽게 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단순히 우리가 의식적으로 느끼며 내리는 결정이 아닌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혼란스러움은 사실 책의 내용이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그 동안 가지고 살아왔던 내 안의 고정관념을 깨트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에 나는 우리 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인문서를 더욱 관심 있게 찾아보고 읽게 되었다. 이번에 추천하는 『우리는 우리 뇌다』는 그중 가장 쉬우면서도 포괄적으로 인간의 뇌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얘기하듯이, 이 책은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우리의 뇌에 대해 자주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답변을 제시하고, 보다 폭넓은 신경문화neuroculture의 토대를 제공하여 전문가와 대중 사이에 더욱 많은 대화를 가능케 해줄 수 있는 책임이 분명하다.
“아이는 자신이 자유의지로 우유를 원한다고 믿는다.
화가 난 소년은 복수를, 겁 많은 자는 도주를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서 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흥분한 사람, 수다쟁이, 소년 등은 말하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정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 말한다고 믿는다. 정신에는 절대 의지나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스피노자

세계적인 뇌 과학자이자 암스테르담 대학 신경생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70년대 후반부터 20여 년 동안 네덜란드 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던 디크 스왑 박사의 『우리는 우리 뇌다』는 인간의 뇌에 대한 포괄적인 전기(傳記)다. 특히 이 책은, 스왑 박사의 연구 중 가장 유명한 주제인 ‘자궁 안에서 다양한 호르몬과 생화학적 요인들이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 규명’을 기반으로 우리가 자궁 속 태아 때부터 성인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뇌가 삶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의 존재 자체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해준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목차에서 느껴지는 전문성과 내용의 방대함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필요한 노파심이었다. 총21장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마지막 장을 제외하곤 중간중간 띄어 읽거나 순서를 섞어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게 교과서처럼 쉽고 이해하기 좋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사춘기 시절의 뇌, 중독성 물질과 뇌의 관계, 환각 상태의 뇌, 뇌와 종교 그리고 아름다운 환상에 지나지 않는 자유의지까지, 이 책에는 흥미롭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며,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쓰여 있다. 뇌 연구가 뇌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스왑 박사의 이 책은 유전적 요소와 환경의 영향을 고려하는 뇌 과학은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닌 그들을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그들의 결핍에 대해 고민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도 각자 자신에 대한 고정적인 가정과 상식에 도전해보고, 뇌의 기능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넘어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