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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7

자신을 위한 이야기는 없다

Editor. 박중현

어머니께서 팔다리 저림 증상을 앓고 계시는데 뚜렷한 차도가 없어 고민입니다.
관련한 고급 정보나 추천 병원이 있으시다면 부디 에디토리얼에 적힌 제 메일로 조언 주시길 부탁드리옵니다.

『당신을 위한 소설』 하세 사토시 지음
북스피어

아직 ‘나이’라는 명사를 사용하기 민망한 연령을 살고 있지만 해를 거듭하며 각종 경조사에 참석하는 빈도가 늘어남을 느낀다. 지금도 다분히 개인주의적 성격이지만, 더 예전에는 친목이나 교류를 위해 애써 만들어내는 모임이나 심지어 결혼식이나 장례식도 때론 허례허식 같다 여겼을 정도였다. 그 존재에 비판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진정성이 중요할 뿐 모임이 존재하고 안 하고 혹은 참석하고 안 하고에 의미를 두는 것이 불편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했구나 싶지만 실제로 내가 이십 대 초반이던 때 친할머니의 장례식에 친구들이나 당시 연인, 그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아 지인들을 경악에 빠뜨린 적이 있다. (그래도 올 사람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더라.) 당시 교제했던 친구는 정작 (이미 다 울어서) 덤덤한 나의 뺨을 울며 후려치기도 했다.
“인격을 데이터베이스라고 생각할 경우, 온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준점은 ‘죽음’ 말고는 없다는 것뿐이에요.”
SF, 그것도 무려 2080년대를 다루고 있는 소설을 내밀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당신을 위한 소설』을 읽고 다소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든 탓이다. ‘어떤 스펙터클을 경험하게 될까’ 하고 집어 들었던 당초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간 셈이다. 오해를 방지하고자 첨언하자면 소설은 고도로 과학이 발전한 가상의 2080년대를 배경으로 뉴롤로지컬이라는 첨단 기업의 창업자이자 개발자인 사만다 워커, 그리고 그녀가 창조한 AI ‘wanna be’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사가 주인공 사만다 워커의 6개월 남짓한 시한부 선고로 시작되긴 하지만, 잘 짜여진 SF를 끌어왔음에도 가장 묵직하게 목도하게 되는 것은 죽음을 마주한 개인의 생을 향한 처절한 투지와 인간의 실존이다. 소설의 내러티브가 동행하는 시점의 폭 역시 대부분 사만다 워커 개인에게 맞춰져, 극도로 개인적이다.
사실 사만다의 ‘서사’는 남의 시선으로는 알 수도 없었을 이야기다. 그녀 자신에게는 시분초 단위로 치열했을 투쟁과 성장, 죽음의 역사이며 실제로 400페이지를 넘어가는 장편임에도 늘어짐 없이 긴장감이 넘치지만, 대다수의 남들은 모른다. 관심도 없을뿐더러 알 수도 없다. 그녀가 근무하고 이끌어온 뉴롤로지컬 사의 사원들 역시 그녀의 죽음은 곧 대체될 수석 연구자의 일시적 부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엔 외골수적으로 일에만 매달려 그 외엔 모든 게 서툰 사만다 워커의 개인적 성향도 한몫하지만, 이는 사실 죽음에 대해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가벼움이자 무거움이다. 때문에 타인의 시선으로 냉정히 정의하는 『당신을 위한 소설』 속 사만다의 이야기는 죽음, 이 두 글자를 벗어나기 힘들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다. 부연하기 민망할 정도로, 그 무수한 죽음의 실존들에 관해 일일히 애도하는 이는 없다.
이 소설의 묘미인 부분이기도 한데, 시점의 전환이 가져오는 무게감의 변화는 이토록 어마어마하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행위Activity 자체가 아니라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각Seeing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큰 이해와 위안을 건넨 것이 인공지능, 그것도 ‘소설밖에 모르는 바보’였던 wanna be라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글을 열며 했던 얘기를 슬쩍 다시 꺼내본다. 결국 지금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경조사의 최대 의미는 공감과 공유다. 표현이라 해도 좋다. “내가 너의 슬픔에 함께하고 있어.” “너의 슬픔을 헤아리고 있어(싶어).” 사만다 워커의 죽음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저 ‘없음’ 외 특별한 온도를 지니지 못했던 것과 반대로 누군가의 중요한 이야기에 참여하는 것. 단순히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서사로 확장 가능한 것. 그것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 형태.
“그리고 사만다 워커는 짐승처럼 존엄 없이 죽었다.”
추신: 다 읽었다면 ‘1’ 이전 5~12쪽을 다시 읽을 것을 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