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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로 가꾼 행복의 정원

에디터: 이수진

행복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일상에서도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깃들게 마련이다. 행복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1923년에 태어나 2014년에 작고한 박정희 할머니는 그야말로 행복한 사람의 대표주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혹독한 가난이라는 한국의 근대사를 통과했지만 네 딸과 아들을 낳으며 기록한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에는 특유의 행복한 시선이 가득 담겨 있다.

서울 신여성 박정희
일기는 한 사람의 내밀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사적인 물건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살았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되기도 한다. 박정희 할머니가 1945년부터 1960년까지 다섯 자녀를 위해 기록한 육아일기가 바로 그러한 예다. 다섯 남매가 태어나 한글을 배울 때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는 사랑이 듬뿍 담긴 육아일기인 동시에 1945년부터 1960년까지 국내외 정세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써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박정희 할머니는 다섯 아이를 낳을 때마다 가장 먼저 국내외 정세를 기록한다.
첫째 딸 명애는 일본이 망하기 하루 전에 태어났고 둘째 딸 현애는 삼팔선을 넘어온 해에 태어났다. 셋째 딸 인애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태어났으며 넷째 딸 순애를 낳았을 때는 한국전쟁 이후 유엔군이 국내에 주둔할 무렵이었다. 막내아들인 제룡이 태어난 해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시대이자 세계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두 패로 나뉘어 들끓고 있었다.
박정희 할머니는 빠듯한 살림을 꾸리며 아이들을 위해 육아일기를 쓰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범상치 않았다. 그녀는 특별히 두드러지거나 특이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세속의 통념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자녀들이 태어났을 때 국내외 정황을 기록한 것도 그녀의 시선이 조금 남달랐음을 보여준다. 박정희 할머니는 사회 엘리트층과 결혼하여 평생을 살았지만 세속 기준의 부유한 삶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훈맹정음’을 만든 그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박정희 할머니의 신여성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박정희 할머니는 임신으로 몸이 변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가사 노동의 짐을 나누지 않는 면모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역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에 놀라며 시달리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과중한 노동을 덜어 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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