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8

인내 끝에 온 앨리스

Editor. 김지영

책 기피증 완치를 목표로 비교적 이야기가 재미난 책만 읽고 있다.
얼마 전 자전거 베키에게 주인으로 간택 당했다.
파마가 드디어 자리 잡았다.

『앨리스 죽이기』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검은숲

책 기피증 완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쉴 틈 없이 사건이 터지거나 소재가 자극적인 작품 위주로 읽고 있는데, 주변에는 ‘책 기피증을 이겨내려고 편식하려는 요량이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아무렴 어때, 완치가 목표인걸.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집어 든 작품은 『앨리스 죽이기』였다. ‘처음 접하는 장르일수록 고전은 피하자’가 신조인지라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을 무턱대고 구매했다. E-book 사이트에서 종종 무료로 배포하고는 있지만, 종이의 물성을 좋아해서 책을 샀다. 성공적이었다. 리뷰 한 편 읽어보지 않고, 순위만 믿고 산 책치고 이 정도면 대성공이다.
사실 앨리스, 이상한 나라, 표지 이미지, 이 세 가지가 불안요소였다. 그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차용한 여러 영화나 소설, 만화를 ‘덕질’을 핑계로 읽었는데, 하나같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조니 뎁이 출연했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의 나라 앨리스>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마저도 앨리스 시리즈와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지만.) 거짓말 약간 보태 1장을 읽으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상한 나라 사람들의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대화, 서술을 찾아보기 힘든 대화글을 읽으면서 포기할까 고민했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2장에서 현대 사회에 사는 ‘구리스가와 아리’가 등장해 자신이 매일 밤 꾸는 꿈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의심을 거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도마뱀 빌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던 때 달걀인 험프티 덤프티가 여왕의 정원 담벼락에서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3월 토끼와 모자 장수는 달걀이 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 가지 않는다며 살인 사건이라 확신한다. 여왕의 정원을 관리하는 3월 토끼가 앨리스를 보았다는 증언을 하자 그들은 앨리스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 후에도 바다코끼리 그리핀이 생굴을 한꺼번에 먹다 목에 걸려 죽고 3월 토끼가 스나크에게 살해되면서, 이미 범인으로 지목된 앨리스가 연쇄살인의 누명을 쓰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이상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아리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험프티 덤프티가 죽었을 때 별명이 달걀인 학교 연구원생이 학교 담에서 떨어져 죽었고, 덩치가 바다코끼리처럼 큰 교수가 생굴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 아리는 우연히 자신과 같은 꿈을 꾼다는 이모리와 함께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추리를 시작하고, 아리와 이모리처럼 이상한 나라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상한 나라와 현대 사회라는 두 세계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등장인물이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이 두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나다 보니 대략적인 줄거리라 하기에 장황하다. 확실히 기존의 ‘앨리스’ 시리즈와는 별개인 세계관을 도입해 새로운 플롯을 만들어냈다.
영화나 책을 보고 별생각 없이 지인에게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편이다. 상대방에게 작품 내용, 사물의 의미 등 알고 있는 혹은 유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모아 한참 떠들고 나서 “어차피 안 볼 거지?”라며 죄책감을 덜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닌지라 17년 지기 친구의 경우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능숙하게 스포일러 방지 자세를 취한다.
“재미있었어, 없었어? 그것만 말해.”
이러한 상황에 부닥치면 입이 간지러워 몸서리를 친다. 지금도 “사실은 말이야 앨리스가!” 동네방네 떠들고 싶다. 소설에 등장한 사건을 하나씩 언급하며 이건 어떤 복선이고, 저건 어떤 복선이고 주절주절.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지긋하게 읽었으면 한다. 비록 전체 364페이지 중 대화를 제외하면 20페이지가 안 될 것 같을 정도로 쏟아지는 말들에 허우적거리며 앞내용을 다시 보는 일이 잦더라도 말이다.
P.S. (입이 무척 간지러워서) 나는 이 글 안에서 단 한번도 ‘현실세계’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