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7

인간의 섹스가 정말 펭귄을 닮았다고?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
다그마 반 데어 노이트 지음
정한책방

주제를 막론하고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 쉽게 읽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도 관심이 있는 주제라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즐겁고 흥미로운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는 사상 최대로 바쁜 이 시기에 단 두 시간 만에 읽은 책이다. 그것도 “아~ 그렇구나!” “정말?!” 등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흥미진진하게 말이다. 이는 내가 ‘섹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섹스의 즐거움이나 환상적인 섹스를 위한 팁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과학적인 근거를 두고 이 지구상의 섹스에 관해 가볍게 서술한다.
책은 섹스가 지구를 가장 역동적인 행성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말한다. 섹스의 기원부터 심리와 감정의 상태를 살피고 다른 동물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생명과 섹스의 관계에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결국은 섹스로 인해 탄생했다는 것과 우리 주변이 온갖 섹스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결국 섹스는 끊을 수 없는 의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비록 본인이 섹스를 하건 안 하건 세상은 그것으로 인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성에 관해서도 알려준다. ‘앵무새의 페니스를 본 적은?’ ‘왜 청어는 괜찮은데 현대 다수의 인간은 일부일처제만 강요할까?’ ‘우리는 왜 질투를 하고 바람을 피울까?’ ‘우리 삶을 규정하는 모든 규율들은 과연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등 우리가 반복적으로 내뱉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도 재치 있게 답해준다. 그리고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이기심이나 생존 법칙에 근거해 오랜 시간을 두고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읽는 순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도대체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이길래 이리도 우리의 감정과 의식의 깊은 곳에 강하게 뿌리 내려 우리를 조종하고 끝없이 번뇌하게 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이 책에 그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우리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래서 깨닫기 힘들었던 많은 것들을 인정하게 해주고 ‘조금 달리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해본다. 그런다고 삶이 메마르지는 않으니 걱정은 접어두자.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는 끝없이 친구를 만나길 원하고 누군가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섹스를 갈망한다. 묘한 감정의 덫이 무엇인지 백 번도 더 되뇌어보지만 우리는 그만 그 안에 스스로 이끌려 들어간다. 책에서 말하는 수없이 많은 과학적 근거와 설명, 역사 따위는 강하게 밀려드는 욕구 앞에서 처절하게 내쫓긴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을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과거 처음 성에 눈 떴을 때를 한 번쯤 회상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언가 꾸역꾸역 피어오르던 그 이상한 감정은 과연 언제가 처음이었을까? 또 우리는 그때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을 했던가? 이와 같은 회상은 우리를 피식 웃게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 이웃집 남자 아이의 “섹스 좋아해?”라는 일방적인 물음에 당시 섹스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끔.” 나는 이 말이 참 멋진 것 같다.
그 외에도 동성애가 과학에 근거한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긴 하나 지금까지는 후세를 생산해야 하는 진화론적 관점에 밀려 설 자리가 없었던 반면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동성애가 강한 유전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설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섹스가 자손의 번식에만 목표를 두지 않았다는 것과 동성 간의 섹스가 생산을 할 수 없음에도 지속적으로 같은 비율로 존재해왔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오류나 이탈로만 볼 수는 없는 문제임을 명확히 한다. 결국, 위대한 다윈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과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덧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되었다. 섹스에 관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진 만큼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심사숙고해야 할 민감한 표현이나 단어들도 많이 생겨났다. 가끔 대화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정말로 성차별적 사상을 가진 경우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섹스 교육 부재의 산물인 경우도 종종 있다. 끈적끈적한 섹스를 떠올리기 이전에 섹스의 감정이나 행위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해주는 이런 책이 더 일찍 등장해 많은 남성과 여성이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면 ‘성’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 곤두설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데 여기서 문제, 인간의 섹스의 어떤 부분이 펭귄을 닮았다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