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인간의 몸

에디터 : 박중현 김선주

몸은 하나의 세계다.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친 인류의 흔적이 있고,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새겨나갈 삶의 흔적이 있다. 한 과학자는 “몸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기반”이라고 하기도 했다. 결국 인간은 몸을 말미암아 살며 존재한다. 인류는 끊임없이 그러한 인간의 몸에 얽힌 비밀들을 밝히려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몸은 신비하고도 어렵기만 하다. 이달의 토픽에서는 그 비밀스러운 흔적들을 따라가 본다. 신비함은 살짝 벗겨내고 조금 쉽게 몸의 세계를 여행하기를 바라면서.

1—인간의 몸은 왜 이럴까
왜 두 발로 다닐까?
그 시기인 약 440만 년 전을 인류의 탄생으로 꼽을 정도로 두 발 보행은 인간의 독보적인 특성이다. 우리와 유전암호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타 유인원과 인류의 진화 경로가 분리된 것 역시 인간이 두 발로 서면서부터다. 그런데 직립 보행은 신체 활용 면에서 마냥 뛰어난 특질은 아니다. 인간은 네 발을 모두 쓰는 침팬지처럼 나무 사이사이를 날쌔게 오가며 숲을 잘 헤치지도 못하고, 평지에서도 침팬지와 염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포유류보다 두 배 이상 느리다. 인간은 다람쥐보다도 느리다. 게다가 몸의 중심도 비교적 불안정해 사소한 장애물이나 자극만으로도 넘어지며, 방향 전환도 느리다. 이쯤에서 ‘대신 도구를 사용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한다면 일반적으로 타당하다. 인류가 이동에서 자유로워진 두 팔을 통해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고 응용하며, 종의 정점에 이르는 진화를 이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두 발로 다니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인류가 처음부터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두 발로 우뚝 섰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구의 사용이 직립 보행으로 인해 촉발할 수 있던 결과인 것은 맞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해주진 않는다.
인간이 왜 자연선택적으로 두 발 보행에 적응했는지 아직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증거상 유력한 가설은 있다. 바로 기후에 따른 적응이다. 유인원에서 인류 계통hominin과 침팬지 계통이 나뉠 무렵 지구 전체 기온이 크게 내려가는 한랭화가 수백만 년에 걸쳐 지속됐는데, 이 결과 (인류의 기원지로 꼽히는) 아프리카 열대 숲이 줄어 주 식량인 과일을 얻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 생존 과정에서 특정 과일을 찾고 수확할 때 두 발로 서는 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도 오랑우탄은 나무에 매달린 먹이를 먹을 때 가끔 거의 똑바로 서서 높이 있는 과일을 따는데, 마찬가지로 당시 식량 경쟁에서 두 발로 더 잘 서는 호미닌의 이점이 진화에 반영됐으리라는 분석이다.
두 발 보행의 또 다른 이점은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것이다. 유인원은 현재까지 앞발을 주먹 쥐고 네 발로 걷는 특유의 너클 보행knuckle walking으로 이동하는데, 인간의 직립 보행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는 이에 비해 약 네 배 적다. 이는 같은 열량으로 네 배 멀리, 네 배 오래 이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인류가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대이동을 감행하고, 농경 이전에 장거리 이동이 필수였던 수렵채집으로 오랜 시간 생계를 유지했던 역사와도 통한다. 게다가 사족 보행에 비해 햇빛에 노출되는 표면적이 적어 더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 식량을 비롯한 물건을 수월하게 나를 수 있다는 점 등도 직립 보행이 선택을 받아온 중요 근거들이다.    

2—생명의 탄생, 세포에서 인간으로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엄마,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요?”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정자와 난자의 만남을 비롯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부모가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으나, 아마 아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경우 황새가 물어왔다는 둥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둥 장난스러운 대답을 들려줄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에겐 성교육이라는 것이 있어 대략적이나마 진짜 출생의 과정을 알 수 있지만,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만 해도 정확한 출산 과정을 알지 못했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거의 아홉 달의 시간 차이가 있으니 상관관계를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썩은 고기에서 저절로 구더기가 생기듯, 모든 곳에 생명의 씨앗이 있어 환경에 따라 자연적으로 생명이 태어난다고 믿었다. 또한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부화하기 전 달걀들을 날짜별로 열어보기도 했다. 늦게 열어볼수록 달걀 속의 생명체가 닭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도 위장에서 서서히 자라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17세기 말에는 모든 생물이 지금 모습 그대로 크기만 축소된 상태로 발생한다는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생물학자들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몸 어딘가에 초소형 인간이 존재할 거로 믿었다. 18세기가 되면서 이탈리아 자연과학자 라차로 스팔란차니가 수컷 개구리를 격리해 알에 정자를 뿌리지 못하게 하자 부화가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인간은 정자와 난자라는 세포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사람마다 늙는 속도는 다르다
누구나 죽지만 누구나 늙진 않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둥 판타지를 소환하려는 건 아니다. 인간은 평생 젊게 살다 갈 수 있다. 자기계발서나 양산형 에세이 같은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과학적으로.

먼지 쌓인 몸은 탈이 난다
각양각색 온 의학서와 생명과학서를 뒤져봐도 결국 첫 번째 답은 운동이다. 그러나 여기서 ‘노화 방지’라느니 ‘피부 탄력’이라느니 ‘동안 비결’ 같은 표현은 안 쓸 테니 너무 경기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운동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대 건강치에 근접하게 몸을 유지시켜준다. 일종의 도구처럼, 최적의 성능을 연비 좋게 오래오래 누릴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보통 ‘건강’을 하나의 개체가 지닌 통일된 하나의 상태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너 건강해?’라는 물음과 ‘YES or NO’의 대답만이 준비된 것처럼. 그러나 당연히 무수한 인간의 상태는 둘 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신체면 신체, 신체에서 특정 기관이면 기관, 장기면 장기마다 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각각의 건강’은 성장하며 정점을 찍고, 나이를 들며 자연히 떨어진다. 이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아마 머릿속에 그려질 이 곡선 그래프의 ‘형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래프가 위치할 ‘높이’다. 그러니까 이 상승세 혹은 하락세를 조정할 수 없지만, 수치는 조정할 수 있다. 특정 신체 기능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시기를 맞더라도, 100이던 사람이 50이 될 때 200이던 사람은 이제 100이 된다. 그러나 100이던 사람도 상심할 것은 없다. 오히려 운동만 하면 지금보다 드라마틱하게 훨씬 더 좋은 몸 상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므로. (인간이 제대로 못 쓰고 있는 것은 비단 뇌뿐만이 아니다.) 모든 기관은 사람에 따라 최대의 기능을 내는가 하면 평균보다 못한 기능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최대의 기능 그러니까 ‘젊음’을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 바로 운동이다. 신체가 겪는 보다 경험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자극’이다. 이는 세포나 근육은 물론이고 뼈나 심지어 치아에도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다. 현대인의 고질병 관절염이나 골다공증도 뼈에 충분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아 뼈가 경직되거나 골밀도가 부족해 생기는 현상이고, 매복 사랑니와 같은 치아 문제도 과거에 비해 인간이 충분히 씹지 않거나 너무 부드러운 것만 씹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현 인류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치열이 더 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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