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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6

인간의 광기, 휴머니아

Editor. 박소정

불안한 표정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고양이를 보면 일단 ‘야옹’ 하고 인사부터 하는 고양이 덕후.
눈보다 귀가 발달한 편이라 소음을 피하기 위해 항상 BGM을 틀어놓는다.

『조화로움』 스티브 테일러 지음
불광출판사

주말은 밀린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잘 쉬기’ 위한 계획들로 가득 차 있다. 잘 쉬기 위해 하는 활동은 영화를 보는 것부터 옷 정리, 쇼핑하기, 친구 만나기, 가고 싶었던 카페 가기, 짧은 여행 떠나기 등 대체로 주 중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계획대로 착착 주말을 보내면 무언가 성취(?)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해지곤 한다. 그러나 몸은 오히려 그 반대다. 평소보다 많이 움직인 탓에 근육통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달 마감을 끝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지면서 나는 모처럼 계획 없는 주말을 계획했다. 일단 토요일 오전 잠에서 깨서도 버티는 심정으로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참 천장을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들어 오후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검색창을 켰다. 고민 끝에 친구와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펴고 누워 가을 하늘 풍경을 감상하고 수다를 좀 떨다 가져간 책을 꺼냈다. 책을 읽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싶어 시계를 보았더니 겨우 한 시간 정도 흘러 있었다.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가롭게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인 친구를 보니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나는 결국 친구를 일으켰다. 이러지 말고 당장 뭐라도 하자고.
“백인들은 항상 뭔가를 원합니다. 항상 불안하고 산만하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는 도무지 모르겠어요.
백인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미친 것 같아요.”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칼 융은 1932년 뉴멕시코 지역의 인디언 추장을 만나 부족을 정복한 유럽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추장은 융의 물음에 단호하게 위와 같이 대답했다.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만큼 무언가를 쉬지 않고 갈망하는 태도도 더 넓고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은 충분한 시간이 있는데도 무언가에 쫓기듯 서두르고, 목표를 이루어도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며 더 갖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렇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광기를 정신 장애로 보고, ‘휴머니아Humania’로 정의한다. 휴머니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를 살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살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 것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후에 해야 할 일 또는 고민거리를 떠올리고,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몽상을 하거나 미래로 서둘러 달려가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두기도 한다.
저자는 휴머니아로부터 자유로운 인디언들에게서 조화로움의 해답을 찾는다. 유럽에서 온 식민지 통치자 혹은 선교사들은 게을러 보이는 원주민의 삶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악마는 게으른 손에 할 일을 찾아준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나태란 곧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편견에 불과하다. 원주민들의 노동시간은 일주일 기준 12시간에서 20시간 정도로 비교적 적은 편이긴 하나 그들은 나머지 시간을 조화롭게 살아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 능력이란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자유 시간이 생기면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수공예품을 만드는 등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낸다. 또한 그들은 기다리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도시에 사는 이들이 시간을 쪼개어 하나라도 더 성취하려 한다면 그들은 자연이 자신을 허락할 때까지 며칠이고 기다린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가 잔잔해질 때까지, 산을 넘을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녹을 때까지 다급한 기색 없이 기다릴 뿐이다.
이런 태도의 배경에는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세계와 나를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 것에 있다. 타인, 동·식물, 자연까지 자신과 구분 짓지 않기에 소유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고, 무리에게서 떨어졌을 때 느끼는 소외감이나 결핍감도 없다. 우리가 인디언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습관을 통해 우리는 휴머니아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뇌의 쾌감 중추를 자극하는 것들, 예를 들면 음주, 쇼핑, 정크 푸드 등 일시적인 화학적 반응으로부터 멀어지고 온전히 주의를 자신 안으로 돌리는 것이다. 달리기, 수영, 산책 같은 스포츠부터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등 창조적 활동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저자는 끝으로 아름다움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전하며 조화로움에서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치열한 우리네 삶에서도 가끔 선물처럼 조화로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책에서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을 만났을 때,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때 문득 마음속의 평화가 가득한 상태를 느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거나 조급함을 느낀다면 이 순간을 기억하자. 조화가 깨져 있다는 사실만 자각해도 상황은 훨씬 더 수월하게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