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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0

인간은 짓는다

Editor.강지이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로마 아그라왈 지음
어크로스

인간은 짓는다. 신석기 인류로부터 시작된 ‘짓기’의 습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해 왔다. 초창기 인류의 짓기 기술은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 구상하고, 손을 이용해 만들며 자연의 재료가 지닌 본성을 살리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발현되었다. 꽤 오랫동안 자연과 인간의 공동 작품이었던 집 짓기 기술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변화했다. 현대인에게 건축은 자신의 몸체를 담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만든다는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온갖 기계와 최첨단 장치를 동원하여 더 높게, 더 근사하게 건물을 짓는다. 현대의 건축물은 최첨단 과학의 응집체 그 자체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집의 구조와 형태를 예측하여 어떤 재료를 어느 만큼 사용할지를 결정해주며 오류를 최소화한 건물을 짓는다.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은 구조공학에 대한 이야기다.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땅 위에 확실히 서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 로마 아그라왈Roma Agrawal은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영국 런던의 더 샤드The Shard 설계 팀에서 6년 동안 일하면서 야외에 노출된 첨탑과 기초 부분을 맡으며 건물을 완성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유리 렌즈를 받쳐줄 금속 지지대 설계를 놓고 고민하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을 보고, 수학과 물리학이 안정적인 건축물 구조에 중요하다는 영감을 받아 구조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깊은 애정을 담아 모든 구조물들이 우리와 공존하는 존재이자 사랑 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시간을 건축물과 보낼수록 점점 더 건축물을 경외하게 됐고 심지어 사랑에 빠지게 됐다. 일단 완성되면, 나는 건축가가 아닌한 명의 개인으로서 그 건축물을 만나고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 후에는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만든 창조물과 나름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 (중략) 물론 내가 작업한 건축물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나만의 특별한 것이다.”
책의 앞부분은 건물을 구성하는 골격인 기둥과 보(樑)를 이야기 한다. 건축물의 기둥과 보의 구조에 대한 고려는 안전한 건물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기둥과 보를 적절히 구성하면 많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강하게 지탱되는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설계자의 판단 착오로 건설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며 처참히 무너져 버린 캐나다 세인트로렌스 다리를 예로 들어보자. 굉음을 내며 강철이 부러지고 많은 인부들이 강물로 휩쓸려 갔던 이 끔찍한 사건은 구조물의 기둥과 보가 하중을 이겨 내기 위해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외에도 9.11 테러나 영국 아파트 건물의 붕괴 또한 건물의 핵심 기둥이 건물의 안전성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는 적절한 예이다. 대만의 초고층 건물 타이페이 101이 지진에도 끄떡없는 이유도 코어 윗부분에 위치한 둥근 추, 진동감쇠장치 덕분이다. 거대한 건물은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힘의 원리를 파악하여 중력과 장력 등을 감안해 구조를 잘 짜기만 하면 어떤 외부적 요건에도 든든히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다. 즉, 기둥과 보의 상관관계 속에 물리학적 힘의 분산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건물은 무너질 걱정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 땅 위에 서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자주 건축물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잊는다. 하지만 건축물은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거대한 다리를 위에서 당기고 있는 장력 케이블, 높은 건물의 유리 표면 이면을 떠받치고 있는 철골 구조. 이런 것들이 건축물로 둘러싸인 우리 세계를 만들고 있다. 이런 건축물은 인류가 지닌 창의력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책에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건물의 가장 중요한 토대인 땅과 지하에 대한 이야기, 하수도와 상수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건물에는 사람이 살 수 없기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저자는 책의 마무리에서 앞으로 인간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지어 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상상력의 한계가 있는 평범한 독자로서는 도대체 앞으로 어떤 건물이 지어지는 것인지 그 궁금증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스마트함이 지금보다 혁신적이고 멋지게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길 기대해 본다. 그건물 안에서 생활할 인간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만 있다면, 책의 저자는 자신이 설계한 초고층 빌딩이 건축되는 현장에 임시 설치된 기울어진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두려움을 기꺼이 감수할 용기가 있어 보인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독자들도 이런 이야기를 발견하고 비밀을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 매일 위나 아래로 지나치는, 또는 통과해 지나치는 주위의 수많은 건축물이 달리 보일 것이다. 집, 도시, 마을, 지역을 경이로운 눈길로 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세상을 새로운 눈, 그러니까 엔지니어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