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of Life : 삶의 아틀라스

이 가족이 사는 법

에디터 지은경
사진 알랭 라부알 © Alain Laboile

사진작가 알랭 라부알Alain Laboile은 여섯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겪은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시골에서 맞이하는 6년 동안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사진 속에서 아이들의 세계는 정돈되지 않은 혼란 그 자체로, 진흙투성이인 데다 자연스럽다 못해 추레해 보이기도 한다. 누가 시골생활이 지루하다 했던가?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한 이 가족의 일상은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기에 충
분하고, 그 순간을 즉흥적으로 포착해낸 아버지의 작업은 특별한 예술 행위로 거듭난다. 사진마다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인 자연과 그 속에서 뛰노는 사랑스러운 여섯 아이의 호기심과 생기 넘는 눈빛이 담겨있다.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어느덧 유쾌하고도 무모한 한 편의 모험담으로 완성된다. 이 아름다운 사진들은 우리 삶의 아름답던 순간들을 상기시킨다. 흔히 반복되었던 일상의 장면이 실은 마법같이 특별하고 눈부신 순간이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알랭 라부알 가족은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연철장인인 그는 불과 몇 년전 처음으로 카메라 한 대를 구입했다. 자신의 작업을 직접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의 포커스는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자신의 가족에게로 향했다. 사진기술에 관한 어떠한 훈련도 받은 적 없었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그의 재능은 놀라우리만치 빛을 발한다. 자연스러운 이미지가 뿜어내는 독창성은 가족과 함께 하는 소중함, 그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그의 사진들이 프랑스 아이들의 행복한 삶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매우 직관적으로 포착했다는 측면에서 알랭 라부알의 작업은 스냅 사진의 대가인 자크 앙리 라르티크Jacques-Henri Lartigue,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과도 자주 비교되곤 한다.
흑백사진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한 『세상의 끝에서(At the Edge of the World)』를 시작으로, 그는 자신과 가족의 동화 같은 일상을 담은 『아기 사슴의 여름(Summer of the Fawn)』을
통해 다시 한번 삶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사회적 제약, 학업스트레스, SNS와 같은 속세의 잡음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 시골 생활은 파릇파릇 싱그럽고 설레는 여름날을 닮았다. 그의 여섯
자녀는 고양이, 뱀, 심지어 아기 사슴도 만날 수 있는 매혹적인 마당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신나게 장난을 친다. 그 자유로운울타리 안에도 엄연히 규칙이 존재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의무
가 있으며 어떻게 서로를 위하고 배려해야 하는지, 또 아이들이 어떻게 사랑받기를 원하고 어떤 공부를 하기 원하는가에 관해서도 이 가족만의 방식이 존재한다.
흑과 백의 조화로만 이루어진 사진은 진한 향수와 기쁨을 안겨준다. 컬러가 배제된 사진 속 아이들의 초상은 행복지수에 더욱 진한 콘트라스트를 입은 듯하다. 빛을 머금은 단순한 형상은 이 가족에게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만 같다. 끝없이 찍고 찍어도 일상은 무엇 하나 똑같지 않다. 다채롭고 신선할 따름이다. 온 가족이 모여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헌신과 우정, 위로와 온기가 느껴진다. 알랭 라부알은 자신의 가족사진 작업을 두고 이렇게 밝힌 적 있다. “나는 단 한 장만의 어린 시절 사진을 가지고 있어요. 당시 사진이란 매우 특별한 경우에만 찍는 행사 같은 것이었고 몇 장 안 되는 사진마저도 잃어버린 탓이지요. 그래서인지 사진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가족의 일상을 끝없이 기록하며 시간의 흐름을 그 안에서 느끼고 싶었어요.” 그는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가족의 소중한 찰나를 언제든지 꺼내 곱씹을 수 있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알랭 라부알은 2007년, 39세의 나이에 가족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라이카 Q로 촬영된 그의 가족사진 시리즈는 매우 사적인 보물이자 타인에게 순수한 동심과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한 편의 동화가 되었다. 독학 사진가인 그는 여섯 아이가 지나는 시절을 통해 우리를 유년기 시절 마음 속에 저마다 품었던 크고 작은 아지트로 초대한다. 알랭 라부알의 사진 언어는 언뜻 가족의 일상을 일기처럼 기록한 미국의 사진작가 샐리 만Sally Mann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분명 그것과는 다르다.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자녀들은 그들을 둘러싼 광활한 자연환경을 우주와 일체화한다. 이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는 무한한 공간이며 응축된 한 점의 우주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빠져드는 유희의 세계 속 언어들은 마른 잎사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고양이가 그르렁 거리는 소리, 물방울 튀는 소리, 아이들의 폭발적인 웃음 소리로 발화된다. 사진의 본질에 충실한 순간성과 단순함에서 파생되는 아름다움, 그리고 이 가족의 해맑은 미소
는 현실의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잠시나마 떨어뜨려 놓는다.

March21_AtlasofLife_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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