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october, 2018

이해

Editor. 박중현

사적으로 고른 책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불친절하게 이야기합니다.
당분간 한국소설을 더듬습니다.

『뱀과 물』 배수아,
문학동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는가?
34호 「불친절하고 사적인 책 선택」에서 ‘우리는 정말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나?’라는 물음을 문학의 딜레마라고 표현한 적 있다. 딜레마는 고민이기도 하지만, 대상의 존재 의미를 증명할 숙명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배수아의 『뱀과 물』에서는 더 좁고 본질적인 형태로 (그리고 딜레마가 아닌 관심사로) 존재하는 듯하다. 그것은 ‘이해’다. 작가는 이해의 영역을 다시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으로 회귀시킨다는 인상을 줄 만큼 그 본질을 다시 환기한다. 이는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의 영역과는 다르며 더 근본적이다.
이해를 믿는가? 일상 속에서 이해를 이루기 위해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설명’을 믿는가? 그 회로와 인과를 보증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다른 설명인가? 최초의 인과를 보증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이 가능하지 못할 만큼 오랜 것에서 기원하며, 또한 나도 모르게 자의로든 타의로든 끊임없이 스스로 수정해 왔을 가능성은 없는가?
공교롭게도 『뱀과 물』은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로 꼽힌다. 문장과 서사를 뚜렷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서사가 재미 혹은 시의성에 기대어 봤을 때 가치를 알 수 없고 그 외연을 짜고 있는 인과관계 역시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꿈이나 생각이 현실과 혼재돼 있고, ‘반두’ ‘흉노’ ‘마법사’ ‘서커스’ 등 이질적이고 낯선 실재가 인물과 서사를 주조한다. 인물의 구체적 성격이나 신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물론 존재가 의심스러울 만큼 희뿌연 안개처럼 흐릿하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개의치 않고 작품 사이를 넘나들며 반복 등장하고 전이되고 기시감을 중첩한다. 문학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서사 기저의, 처음에는 유령처럼 인식하기 힘들지만 실은 인물과 이야기 모두를 움켜쥐고 있는, 관념과 욕망 혹은 운명적으로 부여받은 ‘타의적’ 에고ego의 기록들이다. 이것은 문자로literally 설명될 수 없는 이미지image이기에 감각하거나 작가의 소설 속 표현처럼 ‘직관(꿈으로든 글로든)’해야 한다. 서사의 명확성을 검증하는 독서가 『뱀과 물』에서 소용없는 이유다.
이미 일어났다고 알려진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보다 신비롭다. 그것은 동시에 두 세계를 살기 때문이다. —「뱀과 물」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1979」
과거 혹은 어린 시절에 대한 위와 같은 표현에서 이 이해의 본질적 불가해 영역을 좀 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바로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고 미래에도 물론 영향을 주리라는 것, 그 영향이 감각하지 못할지언정 (‘두 세계를 살’ 만큼) 지대하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의 망각은 이를 망상으로 만드므로 과거는 망상이며 미래도 망상이 되리라 확신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도리어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라는 말은 충실함이 아닌 믿을 수 없음(불가해)을 드러낸다는 것. 이러한 지점에서 『뱀과 물』의 다소 난해한 서사구조도 주제의식과 결부해 읽을 수 있다. ‘혼재돼 있’다고 느끼는 우리의 감각은 믿을 만할까. 오히려 앞서 지적했듯 관념, 꿈, 부여받은 과거나 수정하고 선택한 과거 등이 현재 우리에게 가시적이고 설명 가능한 무엇보다 강력한 지배 주체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활자를 벗어나 현실까지 와 닿는 구성력이다. 그러니까 『뱀과 물』의 서사는 기존의 스토리 라인만 따라가도 되는 획일적 선형 구조라기보다, 표면에 (겉돌며) 드러나 있는 서사 아래 웅크리고 있(는데 알지 못하)는 욕망과 기억, 꿈, 운명적으로 부여받은 타의적 에고를 함께 보여주는 병치적, 융합적 제시다. 굳이 표현을 정연히 해보자면 의도(욕망)를 알 수 없는 인과를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처음 던졌던 물음을 뒤집어본다.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