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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9

이십팔 년,평생의 소원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온다

이십팔 년 인생의 평생 소원은 ‘혼자 살기’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게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아냐며 철없다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이 많지만, 모르는 소리. 온전히 혼자일 때 얻을 수 있는 행복과 평안은 수백만 원을 주어도 얻을 수 없는 행복이다. (아닌가, 수백만 원 주고 독립하면 얻을 수 있는 행복이긴 한데.) 아무튼, 이번 생은 글렀다. 서울 어디에 직장을 잡아도 독립하기 애매한 용산구에 살고 있어서 결혼이 아니면 집을 벗어날 수 없는데, 이번 생에 결혼은 포기했으니 다른 방도를 찾아야지. 그래서 지금은 내가 원하는, 좋아하는, 지극히 사적인 취향으로 가득 찬 독립책방을 운영하는 게 꿈이다. 사실 이 꿈은 몇 단계에 걸쳐 진화한 궁극체(?)다. 고등학교 때 조그만 글쓰기 교습소를 차리는 것에서 대학교 졸업이 가까워져서는 시와 책이 가득한 카페로 바뀌더니 이번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책방을 하고 싶다.
이 꿈에 불붙인 장본인은 친한 동네 책방 주인도, 책방지기들의 에세이도 아닌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있으려나 서점』이다. 2018년 여름, 국내에 번역본이 출간되자마자 서점에 달려가 가장 성한 놈으로 골라 샀는데, 표지만 봐도 수돗물 틀어놓은 것처럼 철철 흐르는 귀여움에 매료돼 몇 날 며칠 끼고 살았다. 작가는 『이게 정말 사과일까?』로 2014년 한국에 처음 작품을 출간한 후 지금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2017년에는 볼로냐 국제도서전 특별상을 받으며 전 세계 그림책 시장에 입지를 다졌다. 신스케가 보여주는 그림책 세상은 화려하거나 이색적이지 않은 대신 일상적인 이야기에 기발한 발상을 더해 지금껏 우리가 잊고 지냈던 동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있으려나 서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발하다. ‘서점’ 은 고객이 원하는 책을 판매하거나 추천하는 공간인데, 이곳에 작가만의 상상력을 더해 고객이 무엇을 원하든 맞춤 책을 찾아 제공한다. 그러니까 서점으로써 역할에는 충실하나 판매하는 책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존재하면 좋을 법한 것들이 재기발랄하게 그려져 있다. 갖고 싶은 책이나 물건도 많다. 책갈피나 조명 기능이 되는 독서 보조 로봇이나 책 포장법을 알려주는 책, 도서견, 씨앗을 심으면 나무가 자라는 책 등 상상만 해도 기발하다.

『독서 보조 로봇』
시끄러운 곳에서 귀를 막아 줍니다.
독서를 격려해 줍니다.
어두운 데서 읽으면 야단칩니다.
잠을 자면 깨워 줍니다.
감상을 들어줍니다.
책갈피 기능 장착!’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아 책을 파는 일이 돈이 되겠냐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히곤 하는데, 신스케가 보여준 서점이 존재한다면 부자가 되지 않을까.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재미있는 책이 없어서 등 책을 읽지 않는 수많은 핑계를 이겨내고 호기심, 궁금함, 재미남을 자극해 책 자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 생긴다. 단순히 재미있는 그림책이라는 생각보다는 책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책이기에, 그래서 내가 책방 문을 연다면 사람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나눠줄 수 있지 않겠냐는 터무니없는 포부가 들끓게 한다.
언젠가 꼭 책방을 열 생각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핑계 대며 내가 꾸민 공간에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한적한 동네에 사람들이 모여 삼삼오오 책이나 사는 이야기를 하며 만남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 그들이 원하는 책을 척척 골라 손에 쥐여주고 나면 각자 자신만의 추천사를 쏟아내 입에서 입으로 책 소문이 퍼질 수 있게 하는 공간, 나는 그런 공간을 꿈꾼다.
P. S. 남들은 내게 사업하면 좋을 인재라고 칭찬한다. 포부가 남다르다고 말이다. 그런데 비밀 하나 풀어놓자면, 난 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