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6

이성을 가진 동물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동물들의 소송』 안토니 F. 괴첼 지음
알마

동물 복지와 동물 보호라는 단어가 거론될 때 우리 중 누군가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만다. 사람에 대한 복지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마당에 동물 복지가 무슨 소리냐며 언짢아한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우리나라도 잘 모르는데 무슨 해외여행이냐?”라고 묻는 것과 비슷한 맥락은 아닐까. 인간의 복지 이전에 동물 복지를 생각하자는 말도 아니고 인간보다 동물을 더 생각해야 한다는 뜻도 아닌데, 이런 식의 방어적인 자세는 전혀 건설적이지 못하다. 학대받는 동물을 보고 싶지 않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알겠지만, 그러한 외면 또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유대인 학살이나 마녀사냥 등도 당시 사회 분위기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니만큼 수많은 사람이 이를 당연시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런 소극적인 행동조차도 큰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물론 동물에 관한 인식이나 관습은 인간 생존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고, 동물을 생명 이전에 음식으로 생각하는 관습으로 인해, 또 우리 종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그리 큰 관심을 받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은 어떤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하며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성은 자신이 중요한 만큼 다른 객체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동물의 복지와 학대에 관해 많은 사람과 최대한 이야기 나눌 것이고, 그들이 만약 이런 나의 행동을 부담스러워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닌 것을 그런 척, 대수롭지 않은 척, 혹은 불편하다고 해서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행동으로 수많은 친구가 내 SNS로부터 떠나갔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동물의 고통을 만나자니 적잖이 괴롭거나 짜증이 났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렇지만 빈 허공에 대고 몸부림치자니 외롭고 또 외로웠다. 이런 내 마음을 다독여주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앙투안 F. 괴첼의 『동물들의 소송』이 바로 그 책이다.
저자는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동물변호사다. 책은 비참하거나 무겁고 또 어두운 느낌이 아닌 당당하고 흥미로우며 명료하다. 법체계 내 동물을 위한 재단을 설립했고, 스위스가 최초로 헌법에 동물의 존엄성을 명시한 국가가 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저자의 필체는 설득력 있고 쉬우며 단호하다. 저자는 이 세상의 동물들, 그리고 그들을 이런 지경에 몰아넣은 인간 사회와 그 엉망진창의 진상을 하나하나 벗겨낸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인간과 동물이 아닌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당연한 듯 벌어져 왔던 우리의 만행들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현실을 보게 된다.
한 나라의 국민성은 그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듯, 우리 삶에 들여온 동물을 생명으로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빌려 우리가 가진 다양한 가치관과 각자의 입장, 이해관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동물에 대한 인식에 대해 활짝 열고 토론하거나 삶에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는 동물이 어떠한 환경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것이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지, 그냥 눈 감는다고 우리와는 무관하게 되는지, 동물 실험에는 어떤 폐단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동물을 방패 삼아 우리가 과연 행복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인지, 또 동물 서커스 쇼에 등장하는 동물들 역시 바라보는 우리처럼 행복할 것인지, 우리의 다른 태도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등 많은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도출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제발, 우리나라에도 진취적인 동물보호법안이 하루빨리 떠올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