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에디터. 지은경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잡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을 잡자! 꿈을 꾸는 자와 꾸지 않는 자 중 과연 누가 미친 것이냐고 세상을 향해 외치던 우리의 바보 같은 영웅, 돈키호테. 그는 정말이지 현실의 무게가 두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인물이다.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자 최초의 근대 소설, 고결한 마음을 가진 미치광이 기사를 통 해 당시 부패했던 사회 현실을 풍자했던 책, 순수한 이상을 가장 귀중한 가치로 여기는 『돈키호테』를 두고 문학평론가 알베르 티보데는 ‘인류의 책’이라 칭했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와 플로베르, 밀란 쿤데라, 안톤 체호프와 같은 수많은 작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책 속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그림으로 기록한 화가들도 많았다. 그중 살바도르 달리 에디션은 달리가 그린 특별한 드로잉과 수채화 작품들로 마치 돈키호테의 눈에 비친 환영 속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돈키호테는 1605년 스페인에서 ‘재치 넘치는 시골 양반 라만차의 돈키호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스스로를 라만차의 기사라 칭하는 가난한 시골 귀족 돈키호테와 무식하지만 돈키호테를 따르는 우직한 종자 산초 판사의 모험을 담은 이야기다. 늙고 마른 몸에 녹슨 갑옷을 입고, 기사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기이한 행동을 일삼으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돈키호테는 객줏집 주인을 성주로 착각하고 평범한 시골 처녀를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공주로 생각한다. 들판에 서 있는 풍차를 거대한 적으로 착각해 공격하는가 하면 무고한 양 떼를 군대로 오인해 전투를 벌인다. 힘든 상황에서 비롯되는 답답한 마음 때문인지 책을 끝까지 들고 읽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기발한 삽화와 미치광이 기사의 순수함에 동요되기 시작하면 결국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된다.
이후 10년 만인 1615년에 『재치 넘치는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출간되는데, 바로 돈키호테 소설의 2권에 해당한다. 미치광이 돈키호테는 멀쩡한 정신을 가진 엄연한 기사로, 무식했던 산초 판사 역시 주인보다 더 많은 속담을 알고 있으며 섬의 총독으로 부임해 사건들을 해결할 정도로 멋지게 거듭난다. 그리고 여전히 돈키호테의 충직한 종자이자 벗이기도 하다. 1권과 2권 모두 두 사람의 흥미진진한 모험을 이야기하는데, 세상 사람들 모두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알고 있다는 전제가 주어진다. 원작에서처럼 이들이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기는 답답함은 책장을 넘길수록 줄어들지만,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괴롭히는 빌런들의 등장에 내용은 한 층 더 암울해지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을 따라 녹아있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가 담긴 장면들이 커다란 감동을 안겨준다.
『돈키호테』 1권의 삽화들은 1946년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된 『명성이 자자한 라만차의 돈키호테의 일생과 업적 제1부』에 실린 드로잉과 수채화 작품들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에 의해 제작되었다. 달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재치와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광기 어린 돈키호테와 매우 닮은 구석이 있던 달리는 “나와 광인의 유일한 차이는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권의 삽화들은 1957년 프랑스 파리의 미술 전문 출판인 조셉 포레가 출간한 『라만차의 돈키호테』 에 실린 석판화 작품들이다. 포레는 달리에게 석판화 시리즈를 제안했고, 이를 통해 달리는 석판화에 전무했던 새로운 기법들을 실험했다. 가령 화승총에 잉크를 바른 탄환을 넣고 발사해 소용돌이를 만들거나 잉크에 적신 빵을 석판 위에 놓고 코뿔소의 뿔로 눌러 으깨는 기법 등을 시도한 것이다. 이 때문에 2권의 그림들은 1권의 구상적인 이미지보다 훨씬 추상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데, 마치 돈키호테 안에 살아 숨쉬던 감정들이 표출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돈키호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19세기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돈키호테』가 생생한 현장의 이미지를 세밀하게 살린 근대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수라고 한다면, 달리의 삽화는 돈키호테의 심상을 가장 흡사하게 그려낸 현대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흔히 돈키호테를 두고 작가 세르반테스의 분신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세르반테스의 운명 역시 쉽지 않았다. 가난과 빚 때문에 굴욕적인 시절을 겪었던 그는 왕이 머무는 장소에서 무기를 꺼냈다는 이유로 처해진 형벌을 피해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1571년 카를로스 1세의 아들이 이끄는 전투 함대에 자원입대해 전장에 나갔다. 더러는 세르반테스가 이때의 경험에서 기사소설의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후 군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배가 태풍에 휩싸이며 해적의 습격을 받아 그는 5년간 포로이자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책의 곳곳에서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이 엿보인다. 사제 수행원에서 군인으로, 군사 식량 조달원, 세금 징수원, 그리고 여러 차례의 투옥 생활로 이어진 그의 삶은 돈키호테의 기나긴 모험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사회의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마음 또한 커졌을 테다. 그렇게 탄생한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지만, 약자를 도우며 정의를 실현하는 순수한 영웅이었다. 그 스스로는 무너져버렸지만 그가 꿈꾸던 유토피아는 결국 산초 판사에 의해 실현된다. 우리의 수많은 꿈들이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선함과 정의로움에 목적을 둔 것들이라면 부딪혀 볼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테니.
December21_Inside-Chaeg_02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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