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9

이걸 왜 이제야 알려주세요?

Editor. 이희조

그래서 1년 뒤 토끼는 몇 마리가 될까요?

『신의 생각』
이고르 보그다노프
그리슈카 보그다노프 지음
푸르메

수학자들은 자신이 수학자임을 밝히면 보통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나는 수학을 못했는데 내 잘못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형편없었기 때문이죠”라고 항변하는 경우. 두 번째는 “수학은 뭘 위해서 배우는 거죠?”라고 물어오는 경우. 이 질문은 보통 수리과학의 유용성을 묻는 게 아니다. 진짜 묻고 싶은 것은 ‘살면서 두 번 다시 쓰지 않을 것을 왜 공부해야 했냐’는 거다.
‘선생님이 형편없어서’ ‘수학을 왜 배우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교과과정 때문에’ 종종 난감함을 뒤집어쓰는 게 억울한 수학자들은 ‘정말 쉬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문과생도 이해하는’ 수학책을 직접 집필하곤 한다. 하지만 한번 등 돌린 연인이 다시 돌아오는 일이 드물듯, 한번 수학(이라기보다는 수학 교사나 수학 성적)에 ‘마상(요즘 애들 용어로 마음의 상처의 줄임말)’을 입은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네가 얼마나 쉽게 쓰고 수학의 신비가 아름답다 떠든다 한들 내가 넘어갈까 보냐. 난 수학 없이도 보란 듯이 잘 먹고 잘살고 있는걸.’
그러다 『신의 생각』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수와 우주의 신비를 다룬 책을 보게 됐다. 수학자가 쓴 책은 아니고 프랑스의 방송인으로 유명한 괴짜 쌍둥이 물리학자 형제의 책이다. 우주는 절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주 바깥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정교한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신의 생각’으로밖에 읽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수학자와 과학자를 놀리려고 쓴 책처럼 보였다. 일단 심각한 책이 아닌 듯 보여서 마음이 열렸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은 창조론자들이 좋아해 마지않는 그 ‘신’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에서 인용했다는 그 ‘신’이란 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이것이 ‘수(數)’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걸까? 평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을 수학책으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수없이 접했던 녀석 ‘π(원주율, 파이)’가 등장했을 땐 솔직히 괜히 친한 척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녀석은 쉽게 넘볼 수 없는 녀석이었다. 3.14로 시작하는 소수점은 10억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곱하기…를 계속 해도 끝나지 않고 무한으로 뻗어나간다. 2011년 일본의 한 회사원이 소수점 이하 10조 자리까지 계산해낸 것이 지금까지 기네스 기록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수는 분명 3.1과 3.2, 더 정확히는 3.14와 3.15, 아니 더 정확히는 3.141과 3.142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된’ 수라는 것이다. 또한 소수점 이하의 수들에 나타나는 규칙은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우연을 가장한 ‘유사 우연’에 의해 배열되어있을 것이라고 몇몇 수학자들은 주장한다. 갑자기 π의 정의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원둘레와 지름의 비율… 지름이 1인 원의 둘레의 길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뜨개질 실이 보인다. 실로 지름이 1인 원을 만들고 그 실의 길이를 재면 되지 않나…? 3.14…? 이걸 왜 못하지? 틀렸다. 정확한 둘레(3.14159265358979323846…)를 구하기 위해선 이 실이 ‘한없이(무한대로)’ 얇아야 한단다. 그리고 그 실은 아직 찾지 못했다. 아… 뭐지, 수학이 가까워지는 듯하면서도 멀어지는 이 기분.
하나만 더 해볼까? ‘여기 토끼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 토끼는 한 달이 지나면 어미 토끼가 됩니다. 어미 토끼는 한 달이 지나면 아기 토끼를 한 마리 낳습니다. 1년이 지나면 토끼는 총 몇 마리가 될까요?’ 갑자기 잘하던 덧셈도 엉키게 만드는 하나도 안 궁금한 문제를 가져와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1, 1, 2, 3, 5, 8… 로 이어지는, 모든 숫자가 앞선 두 숫자의 합인 피보나치 수열을 나타낸다. 신기한 것은 식물 줄기에서 잎이 나오는 배열도 이 피보나치 수열을 따른다는 것이다. 벚꽃은 2번 회전하는 동안 5개의 잎이, 장미는 3번 회전하는 동안 8개의 잎이, 갯버들은 5번 회전하는 동안 13개의 잎이 나온다. 모두 피보나치 숫자이며 나선형으로 자라는 잎 사이의 각도는 ‘황금각’이라 부르는 일정한 각도(137.5°)에 수렴한다. 잎이 난 자리 바로 위에 잎이 나면 햇빛이나 물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최적의 성장 방법을 찾은 결과로 보인다. 가만히 둬도 잘 자라 평소 물 주는 것도 깜빡하던 식물 녀석을 쳐다본다. 너도 대단한 녀석이었구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런데 왜 굳이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를 따르는 걸까?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한 사람이 피보나치라면 과연 이 규칙은 누가 고안해낸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니 어느새 정말 ‘신의 짓’ 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아인슈타인뿐 아니라 괴델, 라이프니치를 비롯한 많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가능하게 한 이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나는 ‘수학’이라는 놈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