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음악의 이름들

에디터 : 서효인 전지윤 현희진

“우리는 왜 음악을 사랑하고, 밤하늘의 달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마도 음악과 달빛 모두 우리의 밤을 아름답게 비춰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수많은 어둠의 밤을.”
_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우리는 왜 음악을 사랑하는 것일까? 니체는 고민했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실 다른 고민을 한다. 우리는 어떻게 음악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멀리 나아가는 방법은 역시 음악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음악을 만든 이, 음악을 전달하는 이, 음악을 듣고 말하는 이름들을 말이다. 이달의 토픽은 어느 음악 덕후 세 명의 주저 없는 사랑 고백으로 채워진다.

「찾았다, 오마이걸!」은 문학잡지 『릿터』의 편집장인 서효인 시인의 본격 오마이걸 영업글이다. ‘내 가수’의 존재가 한 사람에게 어떤 기쁨과 위로, 원동력을 주는지 신명 나는 케이팝 라이프를 들어볼 수 있다. 「음악을 듣다가 소설을 써버림」은 현희진 에디터가 최애 소설가의 소설에서 최애 가수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글이다. 한국문학 속 음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설 ‘듣기’에 도전해본다. 「음악이 자유롭게 하리라」에서는 전지윤 에디터가 클래식 음악과 철학의 관계를 찬찬히 탐구해본다. 클래식과 철학 모두 쉽지 않은 영역이지만, 그 특별함을 기꺼이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의 고집스러운 열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사랑은 어떤 서사를 만들고 있을까? 당신 마음에 빛을 밝혀준 음악들이 궁금해진다.

1-찾았다, 오마이걸!
2020년 오마이걸이 발표한 앨범 “NONSTOP”에 대하여 가을마저 다 지나가 버리는 이 시국까지 묘한 승리감과 대견함을 동반한 자아도취를 느끼고 있다. 최고의 가수보다는 뭔가 그 아래 어디서인가 최선을 다하는 가수를 콕 집어 사랑하는 B급 취향으로 인해 나의 ‘픽’은 연말 시상식에서 가요 대상은커녕 1부 무대에 올라 1절만 부르고 내려가기 십상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오마이걸은 올해 정점에 올랐다. 갖가지 성과와 수치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 음악이 우선인바, 이번 앨범의 수록곡에 불과한 ‘Dolphin’을 들으면 대번에 알 것이다. 아, 2020년 올해의 가수는 오마이걸이다, 다, 다, 다, 다다다다다다…… 무슨 외계어인지 싶은 분들은 직접 노래를 들어 보시길 권한다. 들으면 압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다, 다, 다 다다다다다다.

처음 오마이걸이 눈에 들어온 날은 음악 예능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서였다. 프로그램 모티브는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가져온 듯하다. 방영 내내 영화의 OST가 배경음악으로 깔렸으니 거의 그럴 테다. 영화의 내용처럼 슈가맨이란 반짝하는 히트곡 하나 혹은 둘, 빛나던 시기를 1년 혹은 2년 정도 보낸 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가수를 뜻하는데, 예능 〈슈가맨〉에서는 그저 예전에, 협소하게는 1990년대 인기였던 가수가 등장하여 (나 혼자에게만) 빈축을 샀다. 그날 출연한 슈가맨 중 하나는 무려 ‘유피(UP)’였는데, 아니 슈가맨이라기에는 히트곡이 너무 많지 않은가? ‘뿌요뿌요’ 몰라? ‘바다’ 몰라? 하지만 반가운 건 반가운 거니까, 국민 코미디언 유재석의 넉살에 넘어가 주기로 하자 마음먹고 리모컨에 손을 대지 않았는데, 이윽고 오마이걸이란 걸그룹에서 멤버 전원도 아니고 두 명이 출연하여 유피의 노래를 재현했다. 둘은 랩도 되고 노래도 되는 미미와 재간둥이 승희였다. 분명 연습 기간이 짧았을 테고 본인들의 컴백 무대도 아니었는데, 그들이 잘하면 얼마나 잘했겠는가? 재방송을 살펴보니 최근에 보여주는 능숙하고 세련된 퍼포먼스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저 지나가면 될 일이었는데, 나에게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보험 처리도 어려운, 덕통사고.

그리고 기다렸다. ‘CLOSER’와 ‘Liar Liar’를 들으며 기다렸다. 기다림의 끝에는 ‘WINDY DAY’가 있었는데, 기다림 때문인지 막무가내로 빠져 버린 것인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이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오마이걸을 알리기 시작했다. 좀 유난스러운 구석도 있었는데,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데뷔한지 몇 년인데, 이 정도 성적으로는 안 돼. 이러다 조용히 사라지는 수가 있어.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없어질 수도 있어…… 실제로 그런 그룹이 꽤 있었기에 거짓 불안은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내 모습을 유머로 받아들였다. 웃어서 나쁠 일 없고 웃는 얼굴에 침도 안 맞을 것이고 웃음은 건강에 좋고, 그리하여 복도 오고 스트레스도 풀리니 나쁠 게 없어서 나도 따라 웃었지만, 의아했다. 이게 웃긴가? 하긴 그럴 수도.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오마이걸의 모든 활동처럼. 그 활동 내내 웃고 있는 효정의 웃음처럼.

2-음악을 듣다가 소설을 써버림*
1
린다 퍼핵스.
1943년 태어남.
1970년 ‘평행사변형들(Parallelograms)’이라는 제목의 음반을 발표, 몇 차례의 공연을 가졌다. 이후 아무런 음악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 린다의 음악은 발표 직후에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980년대 말, 린다의 첫 번째 음반은 재발매되었다.**

‘식물의 작물화’는 “어떤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 소비자에게 더 유용하도록 야생 조상을 유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제러드 다이아몬드). 점차 많은 식물이 작물화되었고, 농경과 정착 생활을 계기로 인간은 문화, 예술, 건축에 걸쳐 상당한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작물화를 온전히 인간의 쾌거로만 볼 수는 없는데, 이는 밭에서 자라는 잡초 정도에 불과했던 호밀, 귀리, 보리 등의 야생식물들을 길들이려는 의도는 분명했지만 농업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야생식물을 작물화하려는 인간의 무수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알아채지 못했던 ‘형질 변이’와 같은 ‘자연선택’이 오히려 큰 역할을 했다(앨리스 로버트).

2
박솔뫼의 소설 『도시의 시간』은 ‘제니 준 스미스’라 불리는 젊은 여성 포크 뮤지션에 관한 짧은 문장들로 시작한다. 제니 준 스미스. 1954년 태어나 1976년 누구도 들어 본 적 없는 작은 레코드 회사에서 ‘돌핀(Dolphin)’이라는 제목의 음반을 발표, 몇 차례 공연을 가졌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 우연히 레코드 가게에서 준의 음반을 알게 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지만 레코드를 구하거나 준과 함께 음악 작업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이후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돌핀”은 1970년대 포크 명반을 꼽을 때 늘 언급되었으며 그녀의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포크 뮤지션도 적지 않았다. 2000년대 초입, 준의 처음이자 마지막 음반은 재발매되었다.

3
“원래 제목으로 생각한 것은 ‘미국의 포크음악’인데 ‘미국의 송어낚시’와 너무 비슷한 것 같아 관뒀다. 쓰는 동안 이것저것 좋은 것들을 많이 들었다. 그것이 가장 좋았다.”
_박솔뫼, 『도시의 시간』 작가의 말 중에서

3-음악이 자유롭게 하리라
타자(他者)에 대한 이해
“그는 다른 대상과 직접적이고 즉흥적인 관계를 촉발하는 본능에 가까운 신묘한 재주를 타고났다. (…) 재능이나 천재성이라는 단어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다. 그것은 자신을 완전히 바쳐 몰두하는 능력이자, 스스로의 깜냥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본인이 전심전력의 자세로 헌신하는 상황에 대한 신뢰요 믿음이다.”
_에드워드 W. 사이드, 『경계의 음악』 중에서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으로 전반적 일상의 제한이 이어지더니 벌써 11월이다. 두 주만 더, 보름만 더 하고 버티다 우울한 기분에 침잠해 가던 5월의 어느 날, 도이치 그라모폰의 온라인 채널에서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피아노 솔로를 듣는 내내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거장의 표정과 손의 움직임까지 자세하고 가까이 보고 들으니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그에 대해 “대저 그의 음악은 든든하리만치 정확하고 구체적이고 선명하고 명쾌하며 결코 깐깐하게 신경질적으로 따지고 들지 않는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