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21

위로가 되는 이유

글.김민섭

작가, 북크루 대표. 책을 쓰고,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리디아의 정원』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시공주니어

식물을 길러 본 일이 거의 없다. 어린 시절 방학 숙제로 강낭콩을 심고 그 성장을 기록한다든지, 아니면 고구마나 양파를 컵에 담아두고 싹이 나오는 것을 본다든지 하는 게 전부였다. 스무 살이 넘고부터는 그 정도의 취미조차 없었다. 다만 대학원 박사과정생일 때 후배가 생일에 화분을 하나 선물해준 일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조금만 주어도 잘 자라는 허브 종류라고 했다. 어차피 내가 잘 기르지 못할 테니 극한 환경에도 잘 견디는 것을 골라 사 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뭐 이런 걸 사 왔느냐고 하면서도 그것을 잘 보이는 자리에 두고 종종 눈길을 주었다.
『리디아의 정원』은 몇 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식물을 기르는, 그러니까 가드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 리디아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외삼촌네 집에서 머물기로 한다. 빵 만드는 일을 도우며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도 안다. 그는 외삼촌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저는 작아도 힘은 세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거들어 드릴게요. (…) 전 원예는 꽤 알지만 빵은 전혀 만들 줄 모릅니다. 하지만 전 빵 만드는 걸 굉장히 배우고 싶어요. 외삼촌, 저, 그곳에는 꽃씨를 심을 만한 데가 있을까요?” 리디아는 조심스럽게 꽃씨를 심을 곳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런데 아빠, 외삼촌은 유머 감각이 있는 분이에요?”라고 묻는 편지를 남기는, 다정한 친구다.
리디아는 처음 도착한 동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해 두고 있다. “보고 싶은 엄마, 아빠, 할머니. 가슴이 너무 떨립니다!!! 이 동네에는 집집마다 창밖에 화분이 있어요! 마치 화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외삼촌은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리디아가 지어 준 시를 소리 내어 읽고는 셔츠 주머니에 잘 간직하는 다정함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 이후 리디아는 집에 편지를 보낼 때마다 “외삼촌은 잘 웃지 않지만 곧 웃으실 거예요”라든가 “외삼촌이 함빡 웃을 만한 계획을 짜고 있어요”라든가 하는 추신을 꼭 덧붙인다. 리디아가 짠 계획이란 빵집의 옥상을 온통 꽃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외삼촌에게 가면서 꽃씨를 챙겨가는 일, 그리고 그가 지내는 공간을 꽃밭으로 만드는 일,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 꽃씨를 심는 일… 식물을 길러 열매를 맺게 하거나 꽃을 틔우는 와중에 리디아의 마음은 어디에 가장 닿아 있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일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웃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외삼촌을 웃게 하기 위해서 리디아는 빵을 만드는 중에도 틈틈이 여기저기에서 꽃씨와 화분을 구해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 나갔다. 그런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외삼촌도 결국 그에 진심으로 화답하게 된다. 어쩌면 리디아는 정원을 가꾸며 자신의 일상을 견뎠을 것이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던 것은 몸과 마음을 다할 식물이라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더해, 가드닝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로하기도 한다. 낯선 동네에 도착한 리디아를 반겨준 것은 집집마다 창밖에 놓인 화분들이었다. 그것을 보고 이 아이는 가슴이 떨릴 만큼 큰 응원과 위로를 얻는다.
후배가 나에게 선물한 그 허브는 내가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동안에도 그 자리에 잘 있었다. 그리 관심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줄기의 두께도 길이도 두 배 이상 길어져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래, 나도 잘될 거야’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대학을 떠나면서 주로 책과 논문을 챙겨서 나왔지만, 그 화분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집 베란다에 두고 별것 없는 나의 정원을 완성시켰다. 한 시절을 위로해준 그 식물 하나는 곧 나의 정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