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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6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Editor. 박소정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기욤 아폴리네르 외 지음, 김출곤 외 옮김
읻다

가끔 충동적으로 책을 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거의 제목에 현혹되는 경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로 산 책을 펼쳐보는 것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지만, 사실 내용은 크게 상관없다. 제목에서 벌써 한 권의 신파를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는 제목부터 궁금한 시집이었다. 어떤 순수한 것을 생각했는지 당장 듣고 싶은데 말을 아끼는 제목에 혼자 ‘빨간 세계’로 빠져 야릇한 상상을 했다. 정신을 차려 서둘러 펼친 시집은 상상과는 달리 곱디고운 영혼을 품고 있었다. 폴 발레리, 프란츠 카프카, 두보, 페르난도 페소아, 하기와라 사쿠타로 등 다양한 세계 작가 29인의 시를 번역한 시집으로, 우리말로는 처음 소개되는 시, 정확한 번역이 아쉬웠던 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를 담았다. 이 책을 펴낸 ‘노동 공유형 독립출판 프로젝트’ 출판 모임 읻다는 번역가, 편집자, 디자이너, 작가, 영화 마케터 등이 한데 모여 서로가 노동을 공유하며 더 좋은 읽을거리를 소개한다. 그들은 단순한 개성의 표출이 아닌 아름다운 양서를 만들고자 하는 전통적인 사명의식을 갖고 있다. 이 열정가들이 엮은 시집은 그래서 더없이 순수하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시집을 펼쳐본다. 그리고 순수한 것을 낭독해본다. 아무래도 혼자 또 붉어진다. 아무렴 시는 자유롭게 해석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