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완벽하지 않아도 별일 없습니다
정신의학전문의 하지현

에디터: 이수진
사진: 신화섭(AM12)

인생을 바꾼 한마디로 종종 꼽히는 영화 속 대사가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영화 < 굿 윌 헌팅>의 심리학 교수 숀의 이 짧은 한마디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위로받은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가 그간 개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짐을 부여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근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지뢰가 터지듯 몸살을 앓았다. 그 시간이 주는 파장 역시 차고 넘쳤다. 누군가는 우울해했고 누군가는 피로를 호소했다. 이토록 불안한 지각 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하지현 정신의학전문의를 만나 대한민국의 마음에 대해 들었다.

지금까지 쓰신 책들을 보면 영화, 만화, 예능 같은 대중문화 속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내시는 것 같아요.
대중문화적인 콘텐츠를 좋아해요. 많이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흐름이 보이게 되고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알게 되는 거죠. 대중문화가 시대를 반영하는 속도가 빠르고 변하는 속도도 빠르니까요. 만화, 영화, 책 같은 내 생활 속에 있는 콘텐츠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참고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글쓰기는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학생 때도 쓰긴 했지만 문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PC 통신에 글을 쓰다가 제대로 쓰기 시작한 건 2000년 정도부터예요. 사보에 건강, 심리학 칼럼부터 쓰기 시작해 일간지에 짧은 칼럼을 썼어요. 그러면서 훈련이 됐어요. 2004년에 첫 책이 나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열댓 권 썼어요. 연재도 계속하기 때문에 글 자체가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한쪽에서 연재를 하면 그게 모여서 책이 되고 또 다른 쪽은 단행본용으로 쓰는 글이 따로 있죠. 이렇게 두세 바퀴가 돌면 일 년에 최소 2권 정도 쓰는 것 같아요.

일 년에 최소 두 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메모가 가득한 에버노트를 보여주며) 글을 쓸 재료를 평소에 저장해두고 있어요. 에버노트 같은 곳에 글 쓸 재료를 저장하죠. 7,000~8,000개 정도 있어요. 필요할 때 아이템을 검색하면 돼요. 분류는 평소에 틈틈이 해놓아요. 언제 사용할지 모르니 태그를 달아 놓기도 하고요. 쓰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는 그에 맞는 검색을 하면 돼요. 모듈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번에 발간된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는 한국의 최근 사회적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작은 백과사전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정신의학 전문의가 쓴 사회학 서적 같기도 하고요.
사회학적인 시선에 관심이 많아요. 이전에 『공부중독』에서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떨어져 개인만 생각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듯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 역시 세상의 변화를 보지 않고 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거예요. 과거 개인의 노력만으로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70년대 초,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우리 사회가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이예요. 마치 금리가 높은 시기 같은 거예요. 그런데 90년대 후반 이후 두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하나는 발전의 정체가 일어났는데, 하락이 되었다기보다는 벽에 부딪힌 거죠. 서울이라는 도시의 생활 수준만 보면 OECD 전체 중에서 12위지만 그 이상의 수준이 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그만큼 돌아오는 것은 없어요. 또 한편으로는 ‘네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야’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너는 상담을 받아야 해’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 문제화하는 거죠.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거라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요.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사실은 꽤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런 이데올로기 자체가 문제일 수 있죠. 원래 우리 사회는 ‘안녕하셨어요’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인사했는데 20여 년 전부터는 ‘바쁘시죠’가 인사가 됐어요. 바빠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증명되는 것 같은 거예요. 바빠야만 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됐어요. 바쁘지 않으면 마치 게으른 사람이나 실패자, 낙오자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런 생각은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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