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15

완벽의 역설

Editor. 박소정

예능 프로그램에는 외모가 뛰어나지도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지도 않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캐릭터가 있다. 어리바리한 캐릭터에게 사람들은 인간미를 느끼고 경계심을 풀어간다. 사실 생각해보면 완벽주의 시대에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승자일 수도 있다. 조금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며, 부족한 자신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다수가 ‘완벽’이란 신기루에 매달려 발버둥칠 때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인생을 달게 살아내는 중이다. 결국 완벽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생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문학과지성사

누구나 이해되지 않는 시절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그 시절을 ‘흑역사’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이미 망각의 영역으로 넘겨버린 지 오래다. 나에게는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던 그 시절이 그렇다. 지금은 똑같은 말을 왜 그렇게 많이 읽었는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굳이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아마 ‘불안해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책에서 제시하는 대로 불안을 자양분 삼아 열심히 스펙을 쌓고, 긍정의 궤도에 올라타면 완벽해 보이는 이상향에 가까워질 줄 알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점차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며 자기계발서는 잘 읽지 않게 됐지만 뭐든지 열심히 하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철학자 한병철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 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현 시대는 풍요의 질병, 긍정성 과잉의 피로사회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의 노동력을 쉽게 얻기 위해 성공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전한다. 이전 시대에서 “하면 안 된다”는 부정으로 사회를 통제해 발전시켜왔다면, 오늘날은 “하면 된다”는 식으로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 논리는 자기계발서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성과사회에서는 게임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하듯이 사람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한다.
더 나아가서는 성과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찾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끝난 뒤 허무함이 몰려오듯, 그럴듯한 결과가 나와도 몸과 마음은 헛헛하기만 하다.
이런 삶의 패턴에서 ‘피로’란 부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 아프지 않고,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식의 자기관리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는 필수항목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등바등 성과를 내고 인정받을수록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행복과 자유에서는 더욱 멀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저자는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고 단언하며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당신이 꿈꾸는 성공적인 삶이란 어떠한 삶인가. 혹시 삶이 쳇바퀴 돌아가듯 무의미하다면 능력이 곧 성공이라는 방정식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봐야 할 때다.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문학동네

“있잖아요, 제 가장 큰 문제는 근사한 단어들을 지나치게 많이 쓰려고 했던 일 같아요.” “자네만의 문제가 아니야. 최상의 글쓰기는 절대 바뀌지 않아.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에서 들은 말 중에서 필요한 어휘를 고르게. 그것들은 수세기의 검증을 거친 말들이야.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 —본문 중
기자로 일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뜬다』를 시작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연이어 걸작을 내놓으며 당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비록 그가 복잡한 사생활로 끊임없는 구설수에 휘말리고 비극적인 자살로 삶의 막을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20세기 소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희대의 작가라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헤밍웨이가 세상을 떠나자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두고 “그는 거의 혈혈단신으로 문학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일개 작가지망생이었던 아널드 새뮤얼슨이 헤밍웨이에게 한 수 배우고자 무작정 헤밍웨이가 있는 키웨스트로 찾아간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아널드는 우여곡절 끝에 헤밍웨이와 함께 1년간 바다낚시를 떠나는 행운을 얻는다. 그는 바다를 대하는 자세부터 글을 써나가는 방법,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폭넓은 배움을 전수받는다. 거친 성격 탓에 마초로 불리던 헤밍웨이에게서 나오는 뜨거운 열정과 진심에서 우러나온 조언들은 새뮤얼슨뿐 아니라 세상의 파도와 씨름하던 이들에게도 깊게 와 닿는다. 본래 완벽했을 것 같은 헤밍웨이는 한 작품의 시작부분을 쉰 번 넘게 고치기도 하고, 단편 열 개를 써도 그중 하나 정도만 쓸 만하다고 평가하고 나머지는 버렸다고 하니, 완벽을 추구했던 평범한 한 인간의 노력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불안한 시대 속, ‘잃어버린 세대’의 중심에 서 있던 그가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길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현실에 갇혀 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희망을 싹트게 한다.

『미완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민음사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본문 중
부끄러운 얘기지만 역사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지난날의 기록을 가슴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에릭 홉스봄도 말했다.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세대에게 20세기의 역사는 살아 있는 현실이 아니라 그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한 것, 아득하고 머나먼 이야기”라고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홉스봄은 오랜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직접 나서 세상을 이해시키고 바꾸어나가는 데 전방위로 노력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평가되는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가장 별스럽고 끔찍한 한 세기”로 정리했다. 1917년 태어나 2012년까지 긴 시간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하고 획기적으로 변하는 세월을 겪었다. 막강한 대영제국과 영원할 것 같았던 독일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은 보통의 자서전처럼 기록에 남길 만한 업적 같은 것을 소설의 형태로 다루거나 개인사를 주절주절 떠들지 않는다. 그는 ‘한 인간의 편력을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색달랐던 세기를 소개하는 책’ 정도로 소개하며 궁극적으로는 역사적 이해를 구하고 있다. 그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소년가장으로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선명한 의식의 끈을 이어왔던 데에는 호기심, 고독한 독서, 관찰 등을 통해 복잡한 현실 세계와 거리를 두며 살았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자본주의 시대의 공산주의자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적절한 거리 두기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실제 역사뿐 아니라 재즈를 비롯해 외국어, 인권 운동, 제3세계 등 다양한 것들에 관심사를 두며 각 분야에 수준급 이상의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책의 원제는 ‘Interesting Times’인데 끊임없이 변하는 미완성의 시대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날카롭게 분석했던 그의 숨은 뉘앙스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