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Books: 책과 함께 사는 삶

오래된 만화책에서 피어나는 생명,
Manga Farming

에디터: 이희조
자료제공: Koshi Kawachi / www.koshikawachi.com

“어머니, 만화 잡지 사주시면 안 돼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있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용기를 내 물었다. “안 돼.” 딱 자른 어머니의 대답에 나는 ‘역시나’ 했지만 서운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단호하던 어머니는 무슨 연유인지 다음 달부터 매달 그 잡지를 내 손에 안겨주었다. 한 권에 4,500원. 그 돈을 가지고 매달 동네서점에 가서 아직 잉크도 덜 마른 따끈따끈한 신간을 낚아채 오던 기분이란! 그러면 나는 한 달 내내 싸구려 흑백 재생 종이 냄새가 손에 배이도록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었더랬다. 그렇게 책상 밑 선반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던 그 책들. 그 책들은 어쩜 그리 재밌었을까.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특별한 재미를 줄 것이다. 익숙한 사물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내어 현대 사회를 우화적으로 표현하는 일본 작가 코시 가와치. 그녀는 2009년 처음 오래된 만화책을 이용하여 새싹 화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명 ‘만화농업Manga Farming’. 밑받침에 물을 채우고 만화책을 세워놓으면 만화책이 물을 흡수한다. 그러면 책 속에 심어놓은 씨앗에 수분이 전달되어 새싹이 자라나는 원리이다. 만화책이 곧 영양소를 저장하는 흙인 셈이다. 원하는 페이지에 씨를 심으면 그 페이지에서 새싹이 자라나 하나의 책갈피처럼 보이기도 한다.
흑백 만화 한컷 한컷에 뿌리를 내린, 연약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새순. 만화를 좋아하던 어린 내가 저기 멀리 보이는 듯하다.

April18_LivingwithBooks_04

Photo © Koshi Kawachi / www.koshikawac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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