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February, 2015

영국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마

Editor. 신사랑

아무리 좋은 번역이라 해도 원작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단어들의 조합을 충실하게 의역해 본다고 해도, 문화적 배경과 뉘앙스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원체에 가까운 매끄러움을 유지하는 문장을 만들어내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려운 것을 벗어나 아예 비현실적이라고 할 만큼 번역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문학 장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단어가 만드는 소리와 운율이 핵심인 시집, 둘째는 전달하는 방식과 타이밍의 절묘함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코미디 장르다. 특히 코미디는 문학뿐 아니라 모든 장르 매체에서 유머 코드가 가지는 특성 때문에 문화적·시대적·언어적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한 언어에 얼마나 능통한지는 어려운 시사 뉴스를 이해하느냐보다 그 나라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얼마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지로 판가름 된다. 함의(subtext)와 직유(simile)로 가득한 코미디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그 전제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질적인 번역의 어려움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거나 번역이 되었더라도 그 역량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세 명의 코미디 작가가 있다. 세 작가의 고향인 영국 외에도 영어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이들 세 작가의 책 중 두 작가의 책은 놀랍고 아쉽게도 국내에 한 권도 소개되지 않았다. 이 기회에 꼭 많은 독자들이 원어로라도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The Jeeves Omnibus Volume 1-5』 P. G. 우드하우스
Hutchinson

우드하우스를 아주 간단히 소개하자면 영국 최고의 해학가(humorist) 또는 개그작가(jokesmith)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코미디 장르라고 해서 그의 책들을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일 것이다. 우드하우스는 영어 산문체의 마스터라는 칭송을 받으며 제인 오스틴, 제프리 초서, 그리고 찰스 디킨스와 대등한 실력을 인정받는 영국의 대표 작가다. 또한 우드하우스에 영향을 많이 받거나 우드하우스를 최고 존경하는 작가로 뽑는 근·현대 작가들에는 러디어드 키플링, 크리스토퍼 히친스, J. K.롤링, 스티븐 프라이 그리고 더글러스 애덤스 등 쟁쟁한 이름들이 가득하다. 우드하우스의 작품들이 물론 인생의 거대하고 깊은 의미를 그려내거나 예술적인 세계를 고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책에 담긴 문장들은 그를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를 만큼 완벽하고 절묘하게 구성돼 있다. 우드하우스는 찰스 다윈이 죽은 1881년에 태어나 비틀스가 해체되고 한참 뒤인 1975년까지 94년을 살았으며, 사망 직전까지도 책을 집필했다.(그의 마지막 책은 미완성으로 출판되었다. 『Sunset at Blandings』)그는 우리에게 90여 권이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극작가와 작사가로서 30개가 넘는 뮤지컬에 250곡 이상을 썼고 15개의 희곡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지브스와 우스터의 이야기’ 시리즈는 단편소설 형태로, 철없고 주책맞은 도련님인 우스터와 그의 다재다능한 개인 집사 지브스가 겪는 일상의 어처구니없는 해프닝들을 다룬 코미디다. 이 시리즈는 영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1960년대와 1990년대 두 번이나 드라마화되어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 36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여러 가지의 형식으로 수없이 출판됐지만 Hutchin-son 출판사가 이것들을 한데 모아 ‘지브스 옴니버스’로 출간하면서 보다 쉽게 팬들이 이 시리즈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지브스 옴니버스’는 총 5권이 있다.

『The Salmon of Doubt』 더글러스 애덤스
William Heinemann Ltd.

우리에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더글러스 애덤스는 무척이나 아쉽게 49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모든 상황을 유쾌하고 기발하게 풀어냈던 그의 해학은 전 세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큰 즐거움을 주고 있으며 팬들은 그의 사망 2주 후인 2001년 5월 25일을 애덤스를 기리는 타월의 날(Towel day)로 선정하여 매년 그를 추모하고 있다. 실제로 본인도 P. G. 우드하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여러 번 얘기했다. 또 우드하우스의 마지막 책인 『Sunset at Blandings』의 서문을 쓸 정도로 유쾌하고 웃기는 글들을 사랑했던 애덤스의 책들은 우드하우스와는 또 달리 미래지향적이며,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해박한 지식이 절묘하게 녹아 있는 그만의 풍자적인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애덤스는 생전에 라디오 작가, 컴퓨터게임 개발자, 무신론 운동가, 방송작가, 멸종위기 동물 보호 운동가 등 작가 이외의 수많은 일과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이런 박학다식한 면과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쾌활한 말솜씨를 가진 그는 전 세계 단체들에 일 순위로 꼽히는 초청 강연자가 됐다.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천재적인 기발함을 새로운 작품으로 만나볼 수 없지만 그가 생애 미처 마치지 못한 글들과 어린 시절의 편지, 최고로 꼽히는 그의 강연들, 『인디펜던트』지에 연재했던 칼럼 등을 모아 출판된 그의 마지막 책이 있다. 『The salmon of doubt』는 완벽한 홍차 끓이기부터 테크놀로지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등 일상의 얘기들이 주를 이루지만, 가장주목할 만한 점은 ‘히치하이커’ 시리즈와 ‘더크 젠틀리’ 시리즈의 미완성 글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프라이의 서문도 들어가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아직 한국어 번역판은 나와 있지않지만, 짧은 일상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인 만큼 원어로도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The Liar』 스티븐 프라이
William Heinemann Ltd.

영국에선 그의 이름을 소개할 때 절대적으로 따라오는 수식어가 있다. “Our national treasure, Mr. Stephen Fry!”(우리의 국보, 미스터 프라이!)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영국인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스티븐 프라이는 사실 방송인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젊은 시절에는 휴 로리(미국 드라마 『하우스』의 주인공)와 콤비를 이루어 『프라이와 로리 쇼』라는 인기 코미디 쇼를 진행했고, 또 우드하우스의 작품을 드라마화한 『지브스와 우스터』에서 지브스 역할을 완벽히 재연해 아직까지도 영국 TV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1997년에는 항상 공개적으로 존경해오던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그린 영화 『Wilde』에서 주인공 역을 맡아 골든글로브 최고의 연기자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코미디언과 배우 활동 이외에도 수많은 다큐멘터리 제작 및 출연 경력이 있는 프라이는 영화감독, 게임 쇼호스트, 라디오 해설자, 극작가로도 인정받는 진정한 이 시대의 르네상스적 교양인(Renaissance man)이다. 이러한 그의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경력 때문에 오히려 그는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세 권에 걸친 그의 장편의 자서전(세 권 모두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만큼이나 그의 소설들은 재치 가득하고 완성도 높은 문장체를 자랑한다. 특히 그의 첫 소설 『The Liar』는 우드하우스 식의고난도 유머를 즐기는 팬들 사이에서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프라이의 영어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는 이 책에서는 프라이가 좋아하는 “명사를 동사로 사용하기”와 재치 있는 신조어 사용 등 여러 가지 언어적 실험들이 가득하며 소설의 서술자가 느닷없이 거짓말을 하여 독자들을 당황시키기도 하는 아주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요소들을 경험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