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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1

열병의 한국에 삽니다

글.김민섭

작가, 북크루 대표.
책을 쓰고,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열병의 나날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
시공사

나는 유튜브 우수고객이다. 우선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고, 하루에도 몇 개씩 영상 콘텐츠를 보는 데다가 가끔은 보다 그대로 잠이 드는 바람에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자동 재생하는 영상을 그냥 틀어놓기도 하니 말이다. 특히나 자주보는 것은 먹방 콘텐츠다. 쯔양이나 광마니 같은 먹방 유튜버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단순히 많이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은 좋은 태도로 사람과 음식을 대하고 또 맛있게 먹기 때문에 계속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은근슬쩍 외국인 먹방 콘텐츠로 안내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매운 라면이나 한국의 맛집 같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먹고는 단연 맛있다고 말한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기록이 딱 이런 식이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소위 ‘국뽕’이라 불리는 콘텐츠에는 우리 문화를 세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일종의 결핍을 파악한 외국인들이 속속 ‘국뽕 코인’에 탑승하고 있다. 이런 흐름과 함께 우리 시대 타자의 기록은 더욱 단순하고 자극적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매운맛이 아닌 순한맛을 지닌 기록을 소개한다. 『열병의 나날들』은 ‘르포 문학’이라고 해도 될 만한, 곁에 두고 읽어보아도 좋을 타자의 기록이다. 코로나라는 열병을 앓고 있는 2020년의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잘 담아냈다. 이 책의 저자 안드레스 솔라노는 1년간의 한국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담아낸 『한국에 삽니다』라는 소설로 2016년 콜롬비아 소설문학상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고 그것을 그 경계 바깥에 선 이들에게 전해왔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0년의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디아스포라처럼 보인다. 흩뿌려져 자리에 앉긴 했지만 아직 단단히 뿌리 내리진 못한, 어쩌면 앞으로도 그러할 땅, 한국을 계속해서 관찰한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등장한 2020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한국인 아내와 함께 살아낸 날들을 기록했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이지만, 여기에는 한국인이 아닌 경계인의 시선으로서 감각할 수 있는 섬세함이 깃들어 있다.
“궁금하다. 정상 생활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정상 생활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 있는지, 정상 생활을 그만한다는 게 가능한 건지. 세상 모두가 각자 자기만의 생활이 일을 뿐이니, 그걸 두고하는 말인 것으로 추측해 본다.”
“슈퍼마켓에서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 무슬림 남자와 그의 딸을 제외하고는. (…) 저 여자와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 같은 삶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 항상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책에는 극적인 일화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매운맛을 기대하고 읽는 사람에게는 다소 밍밍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릇 우리의 일상이란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이지만은 않다. 모두가 강렬한 매운맛을 향해 달리는 요즘, 이렇게 순한맛 기록이 더욱 소중한 이유다. 나는 라면도 순한맛만 먹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담담한 기록들을 기억하고 널리 알리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좋은 기록의 서사란 이처럼 경계의 시간에 선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듯하다. 먹방도 좋고 국뽕도 좋지만, 디아스포라들의 기록을 더욱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