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엄마는 충전 완료!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오올

가끔 남편은 나를 답답해한다. 별일도 아닌데 짜증을 내는 이유를 모르겠단다. 영문도 모르고 순식간에 차가워진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럽고 또 아쉬운 마음이 들곤했다. 이제는 내가 예민해진 기색을 보일 때면 남편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아이를 데리고 놀러 나간다. 그렇게 나를 두고 자리를 피해준 게 아이가 두 살배기였을 때인데, 수년이 지나고 나니 주말은 아이와 아빠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되었다. 이것이 아내이자 엄마인 나를 배려하는 남편과 아들의 방식임을 잘 안다.
밀당의 고수
‘하트 머리, 일자 눈썹’씨가 있는 힘껏 달리고 있다. 열심히 내달리는 그의 몸에서 커다란 하트가 빠져나와 둥둥 떠다닌다. 이래저래 일이 많아 머리 만질 시간이 없었나? 눈썹은 또 어떻고? 가운데로 모여 하나가 된 탓에 잔뜩 심통이 난 인상이다. 눈 밑에 드리운 짙은 다크서클은 꼭 그의 그늘진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이, 분명 잘못 건드리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다.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궁금한 이 사람. 대체 무슨 사연을 가진 걸까?
“오늘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면을 쳐다보며 ‘이제부터’가 아니라 ‘오늘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오늘만 안하겠다고? 그럼 내일은 또 다른 계획이 있는 건가? 또다시 궁금증이 일었다. 앙 다문 입술이 열린 기쁨도 잠시, 물음표는 끊이지 않았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길래 사랑하지 않겠다 말하는 것이며, 뭐가 그렇게 힘들어 눈썹이 일자가 되도록 화가 나있는 것이냐 말이다! 단언컨대, 그림책을 보며 이토록 한 장 한장 넘기기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살짝 맛만 보여주고 금세 모습을 감추며 왔다 갔다 하는 게, 마치 연인들의 사랑싸움 같기도 하다.
엄마도 사람이야
“요즘 좀 힘이 들었어.”
오늘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 선언했을 때, 그는 무척 지친상태였다. 몸은 하나인데 하는 일은 여럿이었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가 떼를 쓰면 다독여야 했고,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했으며,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묵묵히 참고 일해야 했다. 식사는 그저 배만 채우면 된다 믿었고, 딱히 피로가 풀리는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카페인 음료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을 반복하던 그는 어느새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허전함을 느낀다. 마치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샘솟게 하는 상자가 텅 비어버린 것만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해내느라 그는 정작 가장 중요한 걸 잃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일으키는 사랑이었다.
“남아 있는 내 사랑은 나에게 쓸 거야.”
오늘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곧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쓰겠다는 뜻이다. 아내와 엄마라는 책임을 잠깐 내려놓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시간은 심리적 건강 관리에 있어서 필수적 요소이다. 방전된 휴대폰을 충전하듯, 소모되어 없어진 감정을 충전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어한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기 자신은 잃어버린 채 엄마로만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도 나도,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엄마도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고 회복해야 함을 책은 일깨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뽀로로〉 〈로보카 폴리〉와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김유강 작가는, 현재 1인 출판사 ‘오올’과 그림책 서점을 운영하며 창작과 출판 일을 겸하고 있다. 그는 『뾰족이 안뾰족이』 『마음 여행』 『스트레스티라노』 『아빠랑 안 놀아』 『까만 양 이야기』등 재미있는 그림책들을 꾸준히 출간해왔다. 일상의 경험을 담은 이야기들은 공감력을 자극하고, 삶에 위로를 안겨준다. 『아무도 사랑 안 해』의 주인공 ‘하트 머리, 일자 눈썹’씨는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삶에 일시적 파업을 선언한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태도에 놀란 남편은 슬슬 눈치를 보지만, 아내가 자유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비켜준다. 일찍이 아내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배려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더욱 세심하게 위할 수 있을 테다. 꼭 내 얘기인가 싶은 게, 아이의 책장이 아니라 내 책장에 꽂아 두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하트의 여왕이 될게
아이는 ‘하트 머리, 일자 눈썹’씨에게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하트의 여왕’이 생각난다고 했다. 가끔 엄마도 하트의 여왕 같은 표정을 짓는다면서, 주로 자기가 너무 떠들거나 떼를 부릴 때 그런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무자비한 폭군의 면모를 보이는 여왕을 닮았다니… 내가 너무 놀란 표정을 지었던지, 아이는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가끔 그렇다는 것이니 걱정 말라고 위로한다. 조금 부족하긴 해도, 아이를 향한 내 사랑만큼은 모자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가끔씩 필요한 내 시간에 만땅으로 사랑을 충전하면서!
November21_TailofTales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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