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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6

어쩌다 글쓰기

Editor. 박소정

불안한 표정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고양이를 보면 일단 ‘야옹’ 하고 인사부터 하는 고양이 덕후.
눈보다 귀가 발달한 편이라 소음을 피하기 위해 항상 BGM을 틀어놓는다.

『쓰기의 말들』 은유 지음, 유유
『나는 어떻게 쓰는가』 김영진 외 12인 지음, 씨네21북스

초등학교 시절 원체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관심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일기장에 쓰라는 일기는 안 쓰고, 몇 차례 동시를 적어 냈기 때문이었다. ‘정 일기를 쓸 거리가 없으면 동시라도 좋으니 일단 써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철썩같이 믿은 건 반 아이 중 나와 약간 엉뚱한 남자아이 둘 뿐이었다. 내가 일기장에 동시를 쓴 건 속사정이 있었다. 매일 별일 없이 굴러가는 무료한 일상을 들키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일기장에 사물이나 그 날에 대한 단상을 띄엄띄엄 몇 줄 쓴 다음 동시라고 냈다. 선생님의 쓴소리를 들은 이후 나는 억지로 일기를 쓰며 창작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조금씩 느끼게 됐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를 보면 막막한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내가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줄 책을 찾아 나선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리베카 솔닛, 『쓰기의 말들』 중에서

읽는 것에 머물다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고 자유기고가의 길을 걷게 된 『쓰기의 말들』 저자는 니체, 조지 오웰, 신영복 등 스승이 되어주었던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 안 쓰던 이들을 쓰기의 세계로 초대한다. 작가들은 글쓰기의 뼈대를 세우는 일부터 살을 붙이고 다듬는 퇴고의 과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하나같이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법칙을 강조한다. 말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넘쳐도 넘쳐나는 줄 모르지만, 글은 한 자도 남기지 않고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기 때문에 과한 것이 더 잘 드러난다. 저자는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아는 것, 느낀 감정을 다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사랑하는 이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욕심을 절제하는 미덕을 갖췄을 때 좋은 글을 쓰는 데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쓰기의 말들』이 ‘나도 한 번 글 좀 써볼까?’ 하고 그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성벽을 낮춰주었다면 『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기자, 카피라이터 등 총 13인의 전문직 글쟁이들이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글쓰기의 정수를 전한다. 그중 유희경 시인이 말하는 ‘기다림’에 대한 솔직한 글은 쓰는 이들에게 큰 공감을 준다. 그는 시상을 기다리는 동안 시인으로서의 재능과 자격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시를 쓰겠다는 것에 대한 후회로 괴로움에 발버둥 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번쩍하고 떠오르는 한 구절이다. 그 한 줄을 의식하는 순간 그 한 줄을 위해 시를 써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지워내는 것으로부터 시 쓰기를 시작한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안수찬 기자는 이런 부담감을 ‘자아의 노출’이라는 태생적 두려움에서 찾는다. 그는 글쓰기란 불특정 다수 앞에 발가벗겨지는 일과 다를 바 없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글을 쓰고 싶어 한다고 전한다. 특히 사랑에 빠졌을 때, 누군가를 떠나 보낼 때, 증오심이 치밀어 오를 때 등 낯선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에 말이다. 지나가면 그만일 수도 있는 찰나의 삶을 불멸의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자아 노출의 공포와 열망 사이의 줄타기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았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가 문제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지식으로 영화를 소화할 수 있다고 믿으며 현학적인 글에 취했던 때를 회고한다. 영화 잡지에 글을 쓰며 대중을 위한 글쓰기에 갈피를 못 잡았던 그는 어느 날 선배에게 ‘망했다’라는 표현이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현학적인 그의 글에 ‘망했다’라는 담백한 표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글을 쓸 때 무엇보다 쉽고 간결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특히 글에 속도가 붙었을 때 겉멋에 취해 군더더기가 붙기 쉬우므로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고 전한다.
최근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은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판계에서 환영할 만한 소식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점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 고무적인 소식이다. 글을 읽는 객체에서 쓰는 주체로 변화했다는 것은 작지만 큰 변화를 예고한다. 글을 쓰기 위해 글감을 찾다 보면 우리가 흘려 들었던 타인의 생각부터 사회의 소식까지 주변 환경에 대한 안테나를 세우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우리 사회에 지금보다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가 북적거리며 활발한 이야기의 장이 펼쳐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