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February, 2015

아무리 더해도 과하지 않고 멋있는 지적 사치품 책

Editor. 지은경

‘한 해를 어떻게 시작할까’라는 식의 글은 전 세계에서 출판되는 모든 잡지 1월호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숫자만 달라졌을 뿐, 어제에 이어 오늘이 시작됐을 뿐인데 우리는 언제나 1월이라는 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 해를 멋지게 보낼 수 있는 방법. 2015년 1월호 《책》이 권하고 싶은 팁은 두말할 나위 없이 “ 책을 많이 읽어라”이다. 그리고 좀 비싼 책을 한번 ‘질러보라’ 는 것이다. 값비싼 명품에만 울고 웃는 사람들에게서는 딱 후진국 인간형의 본성이 드러난다. 비싼 돈 주고 온통 신상 명품으로 꾸며봐야 뭐하겠는가? 함께하는 몇 분 되지 않아 텅 빈 머리가 그대로 들어날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을 상대가멋있게 봐 줄까? 물론 멋있게 봐 줄 이들은 많다. 그러나 텅 빈 강정 같은 인생의 잣대를 들이대는 인간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봐야 뭐 하겠는가. 영혼은 가난 속에서 계속 허덕일 텐데. 책 살 돈이 너무 아깝다고? 소위 말하는 인성과 지성에 돈 들여 기름칠이란 것 좀 시도해보자. 인간 삶의 중요 요소인 건축과 자연, 그리고 미술에 관한 책을 한 권씩 소개한다. 두껍고 도판이 많이 실려 있어 조금 비싸기도 하다. 그래 봤자 한 번 술값보다 저렴하고 명품 가격엔 애당초 비교할 수도 없이 하찮은 가격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 오면 절대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의 건축』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안그라픽스

“인간의 삶과 정신, 한 마을과 건물 그리고 자연 상태의 중심에는 어떤 특성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 특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특성을 추구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탐색이며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런 순간과 상황을 탐색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진실하게 살아 있는 순간이다.” –본문 중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집필한 이 책은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도시와 건축, 마을이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찾는 여정을 그린 책이며 또한 건축 서적의 고전이라고도 불리는 책이다. 인간이 주거하는 작은 방에서부터 집, 건물군, 마을, 그리고 도시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는 기본적인 패턴들을 소개하며 철학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머무는 곳엔 역사와 과학, 사회, 철학, 일상의 경험들과 수많은 이야기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건축이라는 존재가 지탱시킨다. 우리가 속한 이 세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건축과 도시의 모습들에 대해 단순히 아름다우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왜 우리의 도시 모습은 이렇게 진화되어 온 것이며 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삶의 패턴은 또 어떤 연관작용을 이루게 될까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떤 도시에서 어떤 삶을 누리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의 한 부분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도시는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닌 인간들의 얇은 패턴들이 쌓이고 쌓여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날치기 공법으로 생겨난 도시들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도시와 건축이 한 인간의 삶과 어떤 연관성을 맺는지를 살펴보자. 내가 행하는 모든 버릇과 행동들에 대해, 또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 돌아보고 보다 큰 즐거움을 찾아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줄 것이다.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문학동네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기 바란다. 진정 예술이 우리의 삶을 치유하는지, 아니면 모든 게 그저 허영심으로만 가득한 헛소리 같은 느낌으로만 다가오는지를 말이다. 우리에게 많은 작은 것,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의 가치에 대해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또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표현과 문체로 서술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이번에는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그는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과의 대화를 통해 예술작품 140여 점을 거론하며 인생의 고난과 사랑, 자연, 돈, 정치 등을 통해 미술을 즐기는 방식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미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미술이 가진 치유라는 것이 존재하며 우리가 예술 행위를 하는 모든 첫 이유는 결국 치유와 위로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해 전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또는 미술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또한 미술의 역사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책은 더더욱 아니어서 참을성 없는 독자가 읽더라도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자신이 미술 애호가가 된 듯 착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그런 착각이 있어야 더 많은 미술작품에 대한 조예도 키울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니까. 알랭 드 보통의 독특한 재치와 온화한 글 솜씨, 그리고 쉽고도 자연스러운 논리가 독자들을 예술 세계로 입문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풍요로운 삶과 인간관계 등을 마련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2천년 식물탐구의 역사』 애너 파보르드
글항아리

고대 희귀 필사본에서 근대 식물도감까지 식물 인문학의 모든 것을 담았다는 책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는 인간과 자연, 특히 식물 사이의 여러 관계들과 실험, 그밖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책이다. 인간이 식물을 구별하고 연구해야 했던 까닭은 매우 단순하다. 식물로부터 여러 가지 약 성분을 추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을 구별해야 할 이유가 생겨났고 이를 통해 자연계의 어떤 법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삭막한 도시 속 스마트폰과 컴퓨터 세상에만 갇혀 자연의 존재를 잊고 살게 됐다. 그에 따른 보상심리로 알량한 글램핑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가짜 캠핑 문화까지 정말 가관이다. 온갖 풀 이름과 나무 이름을 아는 사람에게 숲은 매우 흥미진진한 놀이의 장소가 된다. 숲 속에서 독초에 쓸려 피부가 쓰라릴 때 바로 옆에 피어난 약초를 문지르면 거짓말처럼 부어올랐던 피부가 가라앉는다. 우리의 구상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의 원조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또 네덜란드 사람들이 뽑아간 우리의 자생식물 나리꽃이 백합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을까? 이제는 우리의 것을 역으로 비싼 개런티를 내며 다시 사들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식물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전 세계로부터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을 비롯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아직도 많이 모자란 상태다. 더욱 큰 쇼핑몰만 짓는다고 경제가 발전하는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을 제대로 보존시키고 식물 연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식물연구의 기록을 서술하고 있다. 그를 통해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풀 한 포기로 인해 발생한 여러 중요한 사건들도 목격하며 식물이 가진 힘에 대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책 중간중간에 들어 있는 시대마다 다른 식물들의 그림들은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