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손으로 하는 일

에디터 : 현희진 박주연 전지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은 무엇이든 소소하게 느끼라는 압박을 준다. 하지만 이는 완벽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진에 ‘#소확행’이라는 태그를 다는 일과는 다르다.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을 썼네’ 싶은 일상사와 대개 상념 정도로 넘겼을 감정이 하루키의 감수성을 거쳐 ‘확실히 행복하다’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 그게 뭐야!’하고 누가 타박이라도 할라치면 안자이 미즈마루의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 툭 등장해 그 확실함을 더한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 마음의 흡족감은 배가 된다. 다만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우리는 생각보다 특별한 관심과 시간을 할애해야만 소확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 기기에 손가락 몇 번 쓱쓱 가져다 대면 필요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다음날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세상. 자동차는 자율주행 모드를 장착했고 인공지능은 삶 전반에 참견한다. 이런 지금, 당신과 나에게 ‘손으로 하는 일’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짓는 인간
대체로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두 명의 할아버지가 있다. 친할아버지는 시인이었고, 외할아버지는 건축가였다.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이거 할아버지가 지은 거야”라는 말을 아빠와 엄마 모두에게서 들어야 했다. 시를 쓰는 일과 집을 세우는 일이 둘 다 ‘짓는’ 일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실제로 시poetry의 연원 포이에시스 poiesis는 예술적 ‘창작’뿐만 아니라 기술적 ‘제작’도 포괄하는 단어이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포이에시스를 “수공업적인 행위와 능력”(「기술에 대한 물음」,『강연과 논문』)이라고 정의하며 「“……인간은 시적으로 거주한다……”」(『강연과 논문』)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하였다. 인간이 시적으로 거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도 짓고 집도 지었던 인간이라면 그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자립적 삶의 기술, 수작(手作)
막연한 상상 속 미래 세상은 그러했다. 기술이 고도화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는 영화 속 일이 도래한다면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리라고. 현재 빠른 속도의 삶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의도치 않게 벗어나 여유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게 되리라고. 우리는 이미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라는 이슈가 일상화되는 삶을 살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 인간에 대한 정의도 기계에 대한 정의도 서로 융합되어 그 경계를 알 수 없게 되는 시대. 아마도 곧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별이 어려워지는 때도 올 것이다.
이런 거대한 기술 사회의 물결 속에서 인간은 점점 소외되어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누구를 위한 속도이며 기술인지 납득하지 못한 채로 우리는 소비를 종용당하고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바쁘다. 예측불허의 세상에서 당장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한 기분마저 든다. 비단 내 직업은 어떻게 될 것이며,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어떻게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더 나아가 본질적 존재로서의 고민에 다다르게 되면 깜깜한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마저 든다. 살면서 품어왔던 인생의 가치관이나 오랜 꿈, 목표 따위가 시대의 거대한 틀 속에서 허물어지거나 그 방향을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허상 앞에 인간은 자기 존재를 확신하며 존립할 수 있을까. 상상에서처럼 인간에겐 자연으로 회귀하는 일만 남게 될까.

집순이는 체질, 가내수공업은 만렙
나는 본래 집순이 체질이다. 활동적이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편은 ‘상당히 사부작거린다’고 놀라워하긴 하지만 나는 가만 앉았거나 누워 빈둥대지는 않으며, 우울하거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히키코모리는 더더욱 아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하고 있어서 ‘집에서 이런 것도 할 수 있군’이란 종목의 경기가 있다면 참가해 겨룰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신할 정도다. 단지 집순이라고 한 데에는 굳이 특별한 즐거움을 집 밖에서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데, 집 안에는 할 거리, 즐길 거리, 읽을거리 등이 끊이지 않아 심심치 않을뿐더러 이들을 하나씩 공략할 때 느끼는 시원함과 성취감은 큰 매력 포인트다. 게다가 이런 긍정적인 기분은 평소 걱정을 끼치는 문제나 스트레스 해결의 원동력이 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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