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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9

세 종교 이야기

Editor. 전지윤

글은 말보다 느리지만 친절하고 명확합니다.
듣기 싫은 말은 귀를 닫으면 그만이지만, 글은 오히려 반추할 시간을 줍니다.
법정 스님은 좋은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고 했지요. 그러려고 읽어요.

『세 종교 이야기: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잎새

코란Quran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 우리들의 오류에 빠지기 쉽고 신성하지 않은 매우 인간적인 면모는 축복이자 짐이다. 경전의 텍스트를 늘 변화하는 상황과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허락하기 때문에 축복이지만,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규범적 가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짐이 된다. (…)텍스트는 읽는 이의 도덕성과 관계가 있다. 경전을 읽는 자가 편협하고, 증오에 차 있고, 억압적이라면 그가 해석한 경전의 말씀 또한 그럴 것이다.
—칼레드 아부 엘 파드Khaled Abou El Fadl, 「이슬람에서 인내의 의미: 코란의 정독과 오독에 대해」, 『보스턴 리뷰The Boston Review』 2001년 12월호

자기 분야에서는 북미와 유럽 등에서도 유명한 내 음악가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런 그를 오랜만에 만나 온갖 수다를 떨던 와중에 진화론의 논리를 거부하고 이슬람 교리에 대한 부정과 혐오를 쏟아내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답답했다.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아무리 선하고 훌륭할지라도 천국에 갈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내 인내심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예술이란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이를 향수하는 이들에게 감동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렇게 편협한 태도로 과연 어떤 음악을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답답했다. 그가 서는 큰 무대 어느 자리에서는 이슬람교도가 앉아 그가 하는 음악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고, 그에게 진심으로 우정과 애정을 표하는 친구나 동료 중에 동성애자들도 분명 있지 않겠는가. 또 그가 아들이나 딸을 낳아 기를 때 그 아이가 우주와 행성에 관해 궁금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2001년 우리는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으로 비행기가 충돌하고, 나뭇잎처럼 사람들이 뛰어 내리거나 떨어지고, 거대한 검은 구름을 만들어내며 두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테러를 경험했다. 2005년에 나는 런던에 살고 있었고, 7월 7일 아침에도 러셀 스퀘어Russell Square에 있는 연구실에 가야만 했다. 바로 그날 다섯 건의 자살 폭탄테러가 런던의 버스, 지하철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나는 가끔 그렇듯 지각을 한 탓에 아예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다. 내가 늦지 않고 탔더라도 그 지하철이 테러가 난 시각의 차량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처럼 ‘내가 그 차에 탔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에 문득 슬프고 희생자들에게 무안한 미안함을 느끼는 이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평일 어느 날 아침에 일터와 학교로 향하는 이들을 벌하는 것이 과연 알라Allah의 위대한 계획인가.
나는 몇 대에 걸쳐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자랐다. 부활절에 100여 개의 달걀에 그림을 그려야 했던 것을 제외하고 종교활동과 신앙에 대해 강요받은 적이 없다. 아버지는 “모든 종교란 오랜 시간 동안 철학과 사상, 정치, 문화,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와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고 발전해 왔으므로 내 종교가 절대적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논리적 오류가 있지 않은가” 하는 대화를 유도해 불꽃 튀는 토론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었다. 내 종교와 신앙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이들의 믿음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기도 했다.
『세 종교 이야기: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를 집어 든 이유는 스트레스 없이 이들 종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였다. 이 책의 저자인 홍익희는 개인적 호기심과 즐거움을 만족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음이 분명하다. 그가 종교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닌 탓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 종교에 대해 난해한 학문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분량이 꽤 됨에도 읽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플러스 요소다. 또한 목차에서 드러나듯 세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궁금할 법한 세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따로 마련한 장에 정리해 준다는 것 또한 플러스다.
그러나 사료와 문헌에 근거한 기술, 저자의 개인적 의견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세 종교에 관련한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거나 전문성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상당한 마이너스로 다가온다. 또한 세 종교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문화와 유대교에 대한 기술, 구약성서와의 관련성 등이 다른 두 종교에 비해 압도적 분량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 말로 된 책들 중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특히 이슬람교까지 균형 있게 다룬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부인할 수 없는 읽을 만한 가치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