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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9

나의 유산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일하는 세포』
아카네 시미즈 지음
학산문화사

몇 달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2018년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을 우연한 기회에 한두 편 본 후, 거의 1년에 한 번씩 출간하는 만화책을 모아 읽었다. 그리곤 다음 편을 기다리면서 언제 소개하면 좋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몸’을 주제로 할 때 비장의 카드를 꺼내듯 이 만화를 반드시 소개하겠노라 다짐했는데,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사람의 몸을 소재로 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많지만 『일하는 세포』만큼 인체 기관의 원리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은 전무후무하다. 『신비한 스쿨버스』처럼 사람이 세포만큼 작아져 인체를 탐험하는 방법은 공공연히 사용됐다. 하지만 『일하는 세포』의 시미즈 아카네 작가는 ‘몸’을 세계화하고 27조 개나 되는 몸속 세포를 의인화하는 새로운 상상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만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독자가 만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공감’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세포』는 제27회 ‘소년 시리우스 신인상’ 대상을 받은 후 월간 『소년 시리우스』에서 2013년 3월호부터 연재 중이다. 애니메이션으로는 2018년 7월에 방영을 시작했으며, 현재 시즌 1로 종영한 상태다. 이 만화는 몸을 순환하는 신참 적혈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적혈구는 폐나 위에서 영양소를 카트에 싣고 혈관이라는 길을 통해 순환하며 세포에 영양소를 전달하고 이산화탄소를 받아 폐로 옮기는 역할을 하는데, 주인공 적혈구는 신참이기도 하고 워낙 ‘길치’라 온전히 순환하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적혈구를 지켜주거나 도와주는 캐릭터도 등장한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백혈구다. 백혈구는 세균의 침입을 막는 가장 최전방 세포로 식균(세균을 잡아먹는) 작용을 하여 우리 몸을 보호하는데, 만화 속 백혈구도 여기저기서 침입하는 세균을 물리친다. 백혈구 외에도 귀여운 유치원생 혈소판, 분홍 경비복을 입은 호산구, 건강한 신체를 자랑하는 암살자인 세포독성 T세포 등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세포들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적절한 설명과 역할수행 장면을 보여줘 이해를 돕는다. 또, 타박상을 입어 세균이 침입했을 때, 감기나 식중독을 앓을 때,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이 ‘재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세포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잘 드러난다.
“역시 세포의 의인화라는 점이 크죠. 그것도 캐릭터뿐만 아니라 세계관으로서의 의인화라는 점이 굉장해요. 세포가 일하는 세계에도 건물이나 전단지가 있다든지, 평범하게 생동감이 있어서 그 디테일의 리얼함에 매력을 느꼈어요.” —애니메이션 <일하는 세포> 감독 스즈키 켄이치
이 만화책의 악당 역할은 대체로 세균이 맡는다. ‘대체로’라고 말한 까닭은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한 세포들이 일으킨 문제 혹은 원래는 일반 세포였으나 변형돼 암이 된 세포의 음모 등도 가감 없이 다루기 때문이다. 또,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 외에 몸과 잘 어우러지는 균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으므로, 반드시 ‘균’이 악당으로 나오는 건 아니다. 최근 만화에서는 악당을 ‘태생이 나쁜 사람’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매번 주인공에게 당하는 악당이라 할지라도 모두 이유가 있고, 그들도 나쁜 짓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정한다. 『일하는 세포』에서도 그 설정이 드러난다. 암세포도 결국 세포다. 똑같은 세포지만 ‘암’이라는 이유로 몸 속 세포들의 표적이 되어 숨어 지내거나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암을 복제한다. 유해한 암을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백혈구가 같은 세포를 살해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장면을 통해 암에 대한 오해를 풀 실마리도 제공한다. 그래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주인공인 적혈구도 백혈구도 아닌 암세포다.
단편적인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어쨌든 이 만화는 생각보다 의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만큼 학습효과도 좋다. 재채기를 하는 이유, 탈모는 왜 생기는지, 땀은 어떻게 배출되는지 등 몸의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고, 심장으로 향하는 정맥판을 일방통행 개찰구처럼 표현한 것도 기발하다.
그간 만화책이 1년에 한 권꼴로 출간된 실정을 보면 올해 6권이 출간될 차례다. 국내 만화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정도의 만화는 아니지만, 최근 넷플릭스나 여러 매체에서 애니메이션 서비스를 시작한 만큼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달그락거리는 것보다는 재잘스러운 즐거움이 있으니 나도 한번 몸속으로 들어가 세포가 된 듯한 기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시미즈 아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