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rch, 2015

세련되게 유행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

Editor. 지은경

세련된 사람들이란 어떤 이들을 말하는 것일까? 끝없이 변하는 유행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최고급 명품을 온몸에 휘감고 멋진 차를 타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일까? 최고급의 범주에 드는 상품들은 분명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최고급의 품질이라는 것은 다른 것들과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고급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또한 남들과 비교될 수 없는 자신만의 중심을 가지고 독특한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번쩍거리는 외모를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고요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멋지다. 그리고 그가 읽는 책이 고뇌와 슬픔, 역사의 애환이 깃든 고전이라면 세련된 광채가 그의 주위를 에워싸는 느낌이다.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열린책들

유럽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돈키호테』(라만차의 돈키호테.Don Quijote de La Mancha)는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또한 스페인의 황금기에 쓰여진 대표적인 문학이며 문학사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정신증을 앓고 있는 시골 귀족 돈키호테는 수백 권의 책을 읽고는 이 세상에퍼져 있는 모든 문제가 기사도 정신 부족에서 비롯됐다는결론을 내고는 자신을 기사로 무장시켜 착하고 충성스러운 하인이자 농부인 산초 판사와 길을 떠난다. 여정 중 온갖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제정신이 아닌 돈키호테는 매번 벌어지는 상황들을 그가 읽은 책 속 이야기들이라고 착각을 하고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돈키호테는 몰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는 등의 온갖 수난을 겪는다. 급기야 들판에 서 있는 풍차를 모닝스타를 든 거인으로 오해해 공격을 하게 되고 또다시 큰 부상을 입고 만다. 상상과 착각을 거듭하고 매번 웃음거리가 되는 주인공이지만 이 소설은 정신이상자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그저 놀려대며 즐기는 단순한 소설은 아니다. 탐관오리들과 부정부패 등 당시의 시대상을 잘 조명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돈키호테의 노력은 바보같고 허튼 몸부림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치광이 돈키호테가 읊은 다음과 같은 말에는 왜 그런지 가슴 한구석을 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으리.”

『지하생활자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문예출판사

러시아의 거장 도스토옙스키의 문장들을 읽어내려가자면 러시아 한 도시의 춥고 우수에 젖은 거리를 걷는 기분이다. 우울함과 쓸쓸함, 고뇌와 철학, 분노, 후회와 절망 등 온갖 감정들이 그의 문체에서 피어 오른다. 특히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유례없이 긴 독백으로 이뤄져 지은이의 생각들이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책 속 주인공은 사회의 그 어느 곳에도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삶에 대한 은폐된 불안과 증오에 시달리며 철저하게고립된 곳에 도피처를 마련하고 그 안에서 독백을 시작한다. 시대와 사회를 적대하고 비웃으며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 든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내부의 상호 모순하는 요소 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기초로 커다란 사회 윤리 철학의 문제로 독자적인 사색을 확대한다. 그의 작품 속에 깊게 자리하는 고뇌와 증오, 불안 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와 또 이 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존재의 의미, 그리고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등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가리켜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평했다. 반어적이고 신랄한 톤으로 쓰여진 이 작품은 우리 안에서 길을 잃은 내적 자아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줄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1984

책 속 화자인 싱클레어는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과기독교 신앙의 가르침 안에서 유복하게 자라는 평범한 소년이다. 그는 가족이 속한 밝은 세계와 그 세계 밖의 어둡고 두려우며 호기심을 갖게 하는 또 다른 세계와 접촉하고 있다. 또 다른 세계는 욕설과 싸움, 어두움의 세계다. 싱클레어는 이 두 세계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신 안에서 감정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불량 소년을 만나 협박당하고 거짓말을 하고 돈을 훔치는 등 어둠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되고 그로 인해 불행한 소년기를 보내는 신세가 된다. 그러한 싱클레어 앞에 데미안이 등장한다. 싱클레어가 갖고 있는 내면의 갈등과 외부의 고통을 발견한 데미안은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독립할 수 있게싱클레어를 돕는다. 이후 싱클레어의 성장과 자아를 찾아떠나는 여행, 그를 통해 마주치는 데미안과의 이야기가 작품 전반에 걸쳐 그려진다. 1919년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이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탄생한 작품으로 헤세의 영혼의전기라고도 불린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예감하고 또 경험한다.
소설 『데미안』은 세계의 거센 흐름과 역사 속 엇갈리는 운명 속에서 성장해 가는 인물들을 통해 한 개인이세계와 맞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 속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내준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한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