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서구라는 환상

에디터 : 전지윤 현희진 다니엘 튜더

“유럽이 아직 기독교의 땅이었던 시절, 인간이 사는 이 대륙을 하나의 기독교 세계가 아우르든 그때 그 시절은 아름답고도 영광스러웠네….”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Novalis는 통일된 교회 안에서 신앙과 사회가 조화와 질서를 이루던 유럽을 이상화했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 주어졌던, 그 아름답고도 영광스러운 시절은 이제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서구 사회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순진한 환상에서 조금 빠져나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어떤 의미를 쌓아왔고, 왜 그러한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서구의 가치가 어떻게 통치 질서로 형상화되어 정치 무대에 등장했을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대상이 된 이주 노동자나 난민은? 이달의 토픽에서는 서구 사회가 지금까지 패권을 쥘 수 있었던 계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성찰해본다. 유럽의 역사를 짚어가며 그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해보고, 1970년대 유럽 이민 노동자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작업을 살펴보며 타자화된 주체들의 물질적 삶과 그 내면의 감정들을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가 직접 보고 느낀 ‘선진국 신드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왜 서구라는 환상을 갖게 되었을까?
1-유럽, 유럽, 유럽
2001년 6월 14일. 이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내 친구 아스트리드가 뉴스를 보다 터뜨린 호탕한 웃음소리 때문이다. 그날의 주요 화두는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스웨덴 고텐버그에서 한 연설이었다. “Africa is a nation that suffers from incredible disease(아프리카는 믿을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나라입니다).” 그는 심각한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위협에 놓인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국제 사회의 공조를 강하게 피력하는 듯 보였지만, 이는 명백한 인종 차별적 발언이었다. 아프리카는 12억이 넘는 인구와 54개국이 있는,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다. 다양한 국가, 인종, 부족, 종교로 구성된 아프리카 대륙을 너무도 쉽고 간결하게, 대강 한 데 묶어버린 부시의 어리석은 발언을 결코 실수로만 볼 수 없다.

작은 아파트에 함께 사는 룸메이트였던 20대의 우리는 유럽이라는 공동체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를 두고 간간히 열띤 토론을 하며 나름 무탈하게 그해를 보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2년 1월 1일, 유럽연합의 12개국은 자국화폐 대신 유로를 통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살던 네덜란드의 상황을 예로 들자면 시장을 보러 가서 길더화를 내면 유로화 지폐와 동전으로 거스름돈을 받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가진 돈이 반으로 줄어드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벨기에,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어느 나라를 가도 같은 화폐를 쓰니 편의는 말할 것도 없고,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는 제법 연대 의식도 느껴지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홍식은 『유럽의 정체』에서 “일반적으로 하나의 국가에서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듯이, 하나의 국민경제에서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한다. 이는 화폐가 단순히 경제 활동을 위해 고안된 수단일 뿐 아니라 민족국가 경제 체제라는 복합적 결정체를 상징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내는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므로 유럽과 같이 통일된 초국적transnational 화폐를 도입하고 상용하는 것을 어떤 이들은 민족정체성의 상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홍식은 유로화가 민족적 정체성을 흔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유럽과 비유럽, 즉 유럽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세우는 역할을 맡아 오히려 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유로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며, 경계 지역에서는 유럽성Europeanness의 정도를 규정하는 잣대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2000년대까지의 유럽의 정체성은 ‘유럽연합’과 ‘유로화’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2-유럽 이민 노동자들의 삶과 기록 : 꿈이라기엔 높고 악몽이라기엔 약한
먼저 사진 한 장을 소개하려고 한다. 남자의 벗은 상반신이 가까이 클로즈업된 흑백 사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른쪽 가슴 위로 아라비아 숫자 3이 휘갈겨 쓰여 있다. 1973년 이스탄불에서 촬영된 이 사진 속 피사체는 독일 이주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터키 노동자다. 당시 유럽인들은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이주해 일하고자 하는 터키인들을 그룹별로 나누어 건강 검진과 직업 심사를 진행했다. 일차 심사를 하는 터키 사무국으로 매일 팔백여명의 후보자들이 보내졌다. 가슴에 새겨진 숫자의 정체는 바로 신분증을 대신하는 숫자. 후보자들은 손가락과 손목부터 무릎, 다리, 척추 상태 등을 진단받았다. 몸이 너무 작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합격 판정이 내려지곤 했으므로 건강 검진을 하는 공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후보자들 사이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건물 밖에는 후보자의 가족들과 심사에 떨어진 이들, 청진기 상자를 들고 다니는 의대생들로 번잡했다.

사진이란 참으로 간단한 듯 복잡하고, 다가가기 쉽지 않은 대상이다. 일차적으로 사진은 증언이자 기록으로, 어쩔 수 없이 부실한 우리의 기억을 보완한다. 단 한 장으로 잊고 있던 소리와 냄새를 소환하고, 저 밑바닥에 숨어 있던 감정들을 들추어내는 힘. 그것이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 우리가 자꾸만 사진을 찍고 보는 이유일 테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1970년대에 터키 노동자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만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진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사진은 현실 그 자체이기 보다는 어떻게든 편집된 현실의 표상이며, 원본이기보다는 누군가의 시선을 통과한 가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피사체가 존재했다는 증명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아니라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사진 속 사건이 얼마나 끔찍하든 얼마나 아름답든 간에 사진이란 찍는 이가 전유한 한순간에 불과해서, 때때로 누군가의 고통을 쉬이 말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가슴에 새겨진 신분증〉이 표지 사진으로 쓰인 『제7의 인간』은 유럽 이주 노동자의 초상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긴 기다림과 고행길을 뒤로하고 마침내 맞이했을 도착의 순간을 마주한 표정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피곤하고 겁먹은 혹은 덤덤한 듯 무심한 얼굴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의 몸을 점검하는 시선들을 맞닥뜨리고는 부담스럽다고 느꼈으며 회피하고 싶었다. 노동의 기회와 더 나은 삶을 거머쥐기 위해 서구로의 월경을 도모하게 된 노동자들의 지난한 여정을, 그리고 이들이 도착지에서 마주쳤을 차가운 시선을 차마 짐작할 수 없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땀땀이 응어리진 사연들을 하나로 뭉뚱그려버리는 건 아닌지, 그래서 결국 보는 이의 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사진을 찍은 장 모르Jean Mohr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여러 국제기구와 함께 일하며 세계 곳곳의 이주 노동자와 농민을 렌즈에 담았다. 대학에서 사회경제학을 전공한 장 모르가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팔레스타인에 파견되어 난민 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였다. 타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난민 수용소의 삶을 알리기 위해 현장에서 어렵게 사진기를 구해 편지 대신 사진을 찍어 보내던 장 모르. 그는 특별히 마음을 붙잡는 주제가 생기면 여러 해 동안 그 주제에 골몰했는데, 이주 노동자라는 주제가 그랬다. 장 모르는 사람들이 잘 알려고 하지 않는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주저 없이 고발하면서도 섣부른 동정을 경계했다. 사진의 힘과 맹점을 늘 기억하며 피사체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탐색했다. 장 모르의 본명은 한스 아돌프 모르Hans Adolf mohr로, 부모는 스위스로 이주해 온 독일인이었다. 나치를 떠오르게 하는 이름 때문에 그는 친구들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고,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꿔야 했다. 그리고 사진가가 된 이후부터는 늘 낯선 땅을 전전하며 살았다. 소외 없이 거리를 두는 시선. 사진을 그저 ‘실재를 보충하는 증명’이라 여기기. 그 역시 이방인으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3-선진국 신드롬
주프랑스 일본 대사관은 매년 일본인 여행객들이 호소하는 정신적 고통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그들의 상상 속 파리와 실제 파리 간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리 신드롬’은 파리지앵들이 만든 것이 아닌, 일본 대중문화에서 이 도시를 어처구니없이 아름답고 섬세한 곳으로 묘사한 탓에 생긴 현상이라 보는 편이 적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일본 대중문화 속에 그려지는 파리는 모든 가게가 유쾌한 빵집이나 패션 부티크인데다가 골목 골목이 모두 반 고흐의 화폭에 담길 법한 매력적인 장면들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 살면서 한국 사회 또한 서구 사회와 문화, 서구식 관념과 정치, 음식이나 온갖 다른 것들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과 같은 서구 국가들이 코로나19에 대처에 실패하는 모습은 많은 한국인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풍성한 문화만큼이나 파리에는 먼지와 악취도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파리 신드롬을 예방할 수 있듯, 서구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있을 때 우리는 유럽 국가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비교적 덜 놀랍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서구의 비루한 대처는 오랫동안 진행되었던, 여러 요소가 연관된 퇴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정부의 무능과 냉담함. 최근 몇 년 동안 팬데믹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그들의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코로나19가 서구 국가들로 전파되기 전에 동아시아에서 몇 주 먼저 발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더 그렇다. 누군가 영국이나 미국, 이탈리아나 그 외 다른 국가의 지도자를 살펴본다면 그들 사이에서 분명 무신경한 사람, 포퓰리스트, 심지어는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나 영국의 77대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과 같은 지도자들은 그저 자신의 권력을 좇기에 바쁘다. 이들은 시민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는, 위험선호자risk-lover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자격 없는 지도자들이 세계의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격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의 지도자를 선출한다. 황색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보며 우리는 어차피 정치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자신의 선택이 실패였음을 알게 되고, 그제야 정부의 규제나 권고에 반항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악의 가짜뉴스와 수많은 마찰을 일으키는 음모론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서구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산이 통제되지 않고, 시민과 정부 사이 신뢰는 위험할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December20_Topic_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