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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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5

생존하기, 그것도 지혜롭고 멋지게

Editor. 지은경

거대한 사회 속에서 규율을 잘 지켜가며 살도록 프로그래밍된 우리에게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틀을 거부하거나 깨부순다는 것, 이미 잘 차려진 도시의 근사한 밥상과 안전장치들을 멀리하고 위대한 자연 속에서 홀로 생존한다는 것, 우리의 길들여진 미의식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허공에서 뜬 구름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좋은 것도 알고, 옳은 것과 이상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지만, 그것이 실생활과 연결되었을 때 오는 괴리감을 무시할 수 있는 일반인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좀 더 슬기롭고 멋진 생존을 위한 방법들을 나열해놓은 책들을 한번 읽어보자. 그리고 그것이 진정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며 어려운일이기만 한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자.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댄 핸콕스 지음
위즈덤하우스

허핑턴포스트의 슬라이드 쇼에는 사람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반면 매그넘의 사진에는 남겨지고 버려진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 보는 사람들에게 전자는 공포와 분노를 주는 데 반해 후자는 슬픔을 준다. 전자는 엄청난 속도로 공유되는 반면 후자는 퍼지지 않는다. (…) 빈곤과 같은 사회현상에 대한 슬픔은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이며 이성적인 분석을 동반해야 정당화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슬픔은 느린 감정이다.—본문 중
대중은 알기 어려운 존재다. 우매하고 선동하기 쉬운, 대략 중학생의 지식수준을 지닌 것으로 모형화되는 이 집단은 때로 예상치 못한 숭고한 일을 해내기도 하고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은 소비자, 유권자, 지지자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린 양처럼 순진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 주체적이고 대단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대중의 모순되고 복잡한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대중 유혹의 기술 중 성공적이었던 사례를 나열하고 분석을 내놓는다. 거기에 언론에 몸담으며 대중과 미디어를 관찰하고 분석한 저자 자신의 해석과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는 독자를 미디어 역사의 여러 현장으로 인도한다. 19세기 파리의 시체 공시소에는 하루 평균 2만 명의 구경꾼이 몰렸다. 당대의 신문들은 이를 소재로 기사와 시각자료를 생산해내며 도시생활자의 공포와 흥분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한편, 1929년 뉴욕에서는 여성권리 신장을 위한 부활절 담배 행진이 열렸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흡연의 자유가 곧 여성해방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한 이 행사는 아메리칸 토바코사의 의뢰를 받은 전설적인 전략가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걸작이었다. 레드불이 올해 개최한 치바현 에어 레이스도 일본인의 뿌리 깊은 욕망을 건드렸다. 레드불의 비행기가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일본인들은 70년 전 자국의 제로센 전투기의 영광을 거기에 투사했다. 여러 시대와 사회를 아우르는 풍부한 사례를 읽는 사이 우리는 소비사회 속 대중의 욕망이 작동하고 조장되는 원리에 다가간다. 누구든 ‘대중’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려 들지만 바로 거기서 우리는 개개인 본연의 더 솔직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세상의 종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100가지의 삶의 지혜』
아나 마리아 스파냐 지음 브라이언크로닌 그림
위너스북

만약 세상에 종말이 닥쳐온다면 우리가 현재 소중히 여기거나 움켜쥐고 있는 것들은 무의미해지고 오히려 하찮게 여기는 것들을 삶의 전부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이나 기술은 당장 급하게 사용되지는 않아도 종말이 닥쳤을 때 우리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종말이 찾아왔을 때’라는 절망적이고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책은 예쁜 삽화들과 무겁지 않은 문체들로 채워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종말이 찾아온 절망적인 상황에서 책마저 절망적이고 무겁다면 우리의 생존 의지와 확률이 저하할 것이 분명하다. 본문 중 눈에 띄는 내용은 “만약 손님이 찾아온다면 3일 이상을 머물지 못하게 할 것”, 왜냐하면 3일 이상이 지나면 주인행세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도서관을 만들고 씨앗을 저장하고 걷고 텐트와 매듭을 만들고, 숙면하는 등 생존뿐 아니라 우리의 일반적인 삶에서도 알아두면 유용한 기술이나 우리의 생활방식을 좀 더 심플하게 바꾸어줄 수 있는, 그래서 본질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도와주는 내용과 팁도 상당히 많다. 절망은 암울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오며 받은 단 하나의 소명이다. 어떤 상황이 찾아올지라도 끝까지 명랑하자. 그래야만 새로운 통찰력과 아이디어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종말뿐이 아닌 일상에서도 통하는 진리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명랑하자. 그래야만 우리의 삶에 보다 많은 가능성과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내일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안그라픽스

저자는 책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일본이라는 나라에 국한시키기보다는 디자이너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떤 사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인류의 내일을 이끄는 사람들 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들이 과학자와 의사라고들 말한다. 분명 의심의 여지없는 명백한 결론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는 이제 예쁘고 허영심으로 뭉친 제품의 겉모습만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이 행복을 나눌 수 있는 터전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삶이란 도대체 어떠해야 할까? 사람들은 섬세하고 치밀하며 간결하게 일을 한다. 그리고 모든 작업들은 인간의 존엄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이 모든 이의 일반적인 의식으로 자리 잡아 만드는 자와 사용하는 자 사이에 감수성이 공유되며 특별한 것을 지향하기보다는 일상적인 것의 가치에 더 큰 중점을 둔다면,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와 세상을 아름다운 문화를 형성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심플해질 것이다. 심플, 단순하다는 것은 단지 단순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점점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니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최대한 심플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그것들을 만드는 이들의 입장은 어떠해야 할까? 심플이라는 단어는 매우 복잡한 것을 뒤에 가리고 있는 단어다. 사람들을 위한 심플함 뒤에는 디자이너의 다각도의 복잡한 생각과 고민들이 들어있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디자이너들이 내일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우리 삶의 모습이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