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 2021

생의 방지 턱 넘기

글.김정희

꿈꾸는 독서가. 책을 통해 세계를 엿보는 사람. 쌓여가는 책을 모아 북 카페를 여는 내일을 상상한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최혜진 지음
은행나무

그림과 예술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전시회를 자주 찾았고, 미술책을 탐독해본 적도 있다.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어렵지만 흥미롭게 읽었던 경험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미술은 항상 어려웠다. 현대미술은 더더욱. 한 번은 작가가 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분의 키네틱 아트를 가리키며 도대체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실례를 범하기까지 했다. 미술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내면을 표현하는 예술일진대, 서사 없는 상징 내지는 시간이 멈춘 순간이다 보니, 문학이 익숙한 내게 미술은 가까이하고 싶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먼 세계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나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할 말 없다’라는 고고한 태도로 자기만의 사유 실험에 매진하기보다는 보통 사람의 삶 가운데로 미술을 데려와 밀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북유럽 화가들에게 매료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덴마크의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 이Vilhelm Hammershøi를 시작으로 북유럽 근대 미술가들의 작품과 미술관 관람기를 들려준다. 나는 서촌에 있는 한 책방의 독서모임을 통해 이 책을 처음 접했다. 이날 우리는 함께 하메르스회이의 회색에 열광하고, 뭉크의 말년 30년을 안타까워하다가 말미에는 너도나도 북유럽 미술관 여행을 버킷리스트에 추가했다. 나 역시, 오로라와 순록을 찾아 떠나는 언젠가의 북유럽 여행 계획에 미술 관람 일정을 추가했다. 그만큼 저자가 들려주는 북유럽 미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유럽 근대 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일상성이다. 화병에 꽃을 꽂는 여인, 주방에서 살림하는 모습,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여인의 뒷모습은 익숙한 일상과 겹쳐 보인다. 불규칙적으로 수없이 반복되기에 특별한 인식이 끼어들지 않는, 무심결에 지나치는 우리네 순간순간들이 빛바랜 사진처럼 화폭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저 한 장면에 불과한 그림 속에서 시간의 켜가 느껴진다. 부엌에서 야채를 다듬고 있는 듯한 가정부의 하루 일과가 예상되고, 의자에 앉은 여인의 뒷모습에서 그의 고요한 내면과 함께 열린 문 너머로 나가고 싶은 은밀한 욕망도 읽힌다. 이렇듯 익숙한 단상의 그림 속 인물들에게 나만의 상상과 해석을 투영해보면서, 북유럽 그림은 하나의 짧은 서사가 되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그림이 쳇바퀴 같은 일상에 매몰된 나의 자아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제서야 불거져 나오는 여성의 삶에 대한 목소리가 북유럽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은근히 울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저자는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그림이 또 다른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평온함과 안락함 뒤의 노동은 외면한 채 살림의 우아한 면모에만 집중하는 시선을 경계하는 날카로움에 독자로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서한영교 시인의 입을 빌려 살림이란 손끝으로 가꾸는 일이고, 그 느낌에서부터 생의 감각이 온다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시지프스의 형벌이나 다름없다며 지겨워했던 살림이 내 삶의 중요한 일부이며, 그러니 소중하게 닦고 길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이 일었다.
북유럽 미술에서 또 하나 인상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광활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겸손함이었다. 페데르 발셰Peder Balke의 그림을 보면서 지난여름 안동에서 보았던 어느 고택 앞 자연 절벽과 그 밑으로 웅장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물이 떠올랐다. 그 거친 계곡물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배운 자연의 숭고미를 체감했다. 장엄한 자연이 내뿜는 숭고미, 그 속에서 한없이 겸허해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초라함과 동시에 생의 의지를 느꼈던 것 같다. 저자 역시 발셰의 그림을 통해 힘을 빼고 내가 모르는, 감당할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이며 조금 가볍게 생의 발걸음을 내딛자고 다짐한다.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여기지 말 것, 그래서 함부로 어깨에 힘을 주지도 말고 타인을 진단하려고도 하지 말 것. 북유럽 사람들의 높은 행복 지수 비결을 말할 때 언급되는 ‘얀테의 법칙’이다. 나는 이와 맥을 같이하는 어떤 힘을 이 책에서 보았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소 힘을 빼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장애물을 피해 굳이 길을 돌아갈 필요도,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을 필요도, 전속력으로 뛰어넘으려 애쓸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저 방지 턱을 넘듯이 서서히 속도를 늦춰 가볍게 넘어가면 될 일이다. 순간의 작은 진정성을 쥐고 일상을 반짝반짝 가꿔나가는, 은근하고 겸허한 힘을 가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