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사귄 지 60년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월북

“오랜 배필, 다 이루지 못한 옛 꿈, 다 펼쳐보지 못한 옛 일,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이야기, 끊어낼 수 없는 인연 (다허 이종사촌 형님의 시문을 본뜨다) 아름다운 추억 돌이키니, 산앵두나무 꽃을 피우고, 평생 지나간 세월이 흔적을 남겼네, 그런 세월이었네. (기축년 단오 하루 전날, 핑루가 여든여덟에 쓰다)”
“제가 꺼내는 한마디 한마디,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진실입니다. 지나간 날의 화면이 모두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책을 한두 장 넘기자 어리고 곱디고운 연인이 흑백사진 속에서 하얀 이를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젊은 연인의 얼굴에는 시름도 구김살도 없다. 한없이 예쁘기만 하다. 연애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는 천정배필로 맺어진 아내이자 평생의 연인 메이탕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남편 라오 핑루의 절절한 사랑가다. 2013년 첫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平如美棠-我倆的故事(핑루메이탕-우리 두 사람 이야기)’로, 집필 당시 91세이던 핑루가 직접 그리고 썼다. 핑루는 메이탕과 만나기 전부터 그녀를 만나 결혼하고 그 이후에 함께 했던 세월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그림으로 쌓아올린 일화와 소회만 해도 열여덟 권의 두꺼운 화집이 되었을 정도로, 구순이 넘은 그는 보통 사랑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한 남자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로만 보기는 아깝다. 현대 중국을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세태 역시 생동감 있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1922년 출생한 라오 핑루는 항일전쟁, 공산정권 수립, 문화대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지나왔다. 시절은 그에게 참담하고 가혹했다. 항일 전쟁이 계속되던 시기에 급우들과 함께 군사 학교에 지원하자, 부모는 걱정과 만류를 가슴에 묻고 안녕을 바라며 그를 보냈다. 군사 학교를 졸업한 핑루는 뿌듯함을 느낄 새도 없이 어머니가 그전 해 가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깊은 슬픔을 안고 나선 전쟁터에서 그는 규정까지 어겨가며 포탄 100여 발을 적군에게 발사한다. 두려울 것 하나 없던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무감했던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이 남자를 변하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맑고 구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다시 사방을 둘러봤더니 온통 푸른 산으로 가득했다. 난 포성 속에서 갑자기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기가 내 무덤 자리가 될까?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무성하게 우거진 푸른 숲 속에서 죽으니 그래도 의미는 있겠구나.’”
핑루와 메이탕이 처음 만난 때 역시 전쟁 중이었다. 어렵사리 나온 휴가 기간에 아버지는 앞으로 처가가 될 곳이라며 서둘러 그를 데려갔다. 장인이 될 마오쓰샹은 아버지와 절친한 사이이며 할아버지 때부터 이미 집안끼리 핑루와 메이탕의 혼인이 약속되었노라 말해준다. “세 번째 마당을 지나 본채 한가운데 방에 들어가려는데 서쪽 본채에 열린 작은 창이 열려” 있고 그 너머에 한 스물 정도 되는 앳되고 어여쁜 아가씨가 “햇빛 아래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왼손에 든 입술연지를 정성스레 바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어머니가 준비해두었을 금반지를 장인에게 건넸고, 장인은 그것을 곧바로 메이탕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들의 약혼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 이야기와는 다르지만, 핑루는 휴가가 끝나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서 스스로 전혀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는 이제 함부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긴긴 세월을 어찌 살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던 그였는데, 약혼과 함께 “난생처음으로 진지하게 앞날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핑루에게 메이탕은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였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살면서 겪은 수많은 소소한 일들이 무슨 특별한 연유도 없이 마음 깊은 곳에 흔적으로 남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소중히 기억되곤 합니다.”
중국은 항일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후 이념 갈등으로 인해 내전이 시작된다. 수년간 민족을 위해 싸우며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만날 날만 고대하던 동료 군인들 모두가 불안해했다고 핑루는 회상한다. 내전 이후 국민당과 국민당 소속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중국 본토를 떠나 타이완으로 쫓겨났다. 국민당 출신 부대 소속이었던 핑루 역시 이주를 고민했지만, 딸을 사랑하는 장인을 생각해 중국에 남았다. 그러나 이후 핑루와 메이탕에게 주어진 현실은 가혹했다. 공산당은 노동개조가 필요하다며 합당한 이유나 정당한 절차 없이 많은 사람들을 안후 이성으로 끌고 갔다. 핑루 역시 1958년부터 1979년까지 22년 동안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핑루는 1년에 딱 한번, 설 명절에만 집에 올 수 있었다. 남편이 끌려간 뒤 홀로 남은 메이탕은 그와 확실히 선을 그으라는 회사의 종용을 받는다. ‘성분이 불량한 집’이 된 탓에 냉대와 손가락질을 견디며 아이들을 키워야 했는데도, 메이탕은 꿈쩍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중노동을 했고, 그래도 살림이 모자라자 조금씩 집안 물건과 패물을 하나 둘 팔아 생존했다. 핑루는 이를 “눈앞의 부스럼은 고쳤지만, 심장 속살을 도려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표현한다.
“출발 당일이 되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멜대를 메고 50~60리 밖에 있는 류안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허페이까지 갔다가 거기서 기차로 갈아탔다. 상하이 역에서 내린 다음에는 옌허남로를 따라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두 시간 동안 집을 향해 마지막 사력을 다해 걸어갔다. (…) 보름 동안의 설 명절은 참 빨리 지나갔다. 기차표는 미리 사두었고, 명절 끝난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면 집을 떠나야 했다. (…) 날 밝을 때가 되어 나갈 준비를 했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가지고 나오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가방이 뭔가에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 그 방울 위에 달린 끈이 샤오홍의 오른쪽 다리에 묶여 있었다. 방울과 끈을 조용히 풀어버렸다. 그래도 샤오홍은 잘 잤다.”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 한 채 살았던 22년의 세월은 모든 게 “불안하게 요동치던 시절”이었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다섯 아이는 인생에서 힘겨운 청춘기를 보내야 했다. 녹록지 않은 사정은 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도망가고 아이들은 이곳저곳에 뿔뿔이 흩어진 채 온 가족이 서로 반목하다 패가망신한 집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핑루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탕과 핑루는 단 한 번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사랑이란 아무런 시련도 어려움도 없는 무탈한 것이 아니었다. 늘 함께 있어야만 성립되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둘의 깊고 단단한 사랑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말 못 할 고통까지 헤아리는 고마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인생 말년에 이르러서라도 마음 놓고 살며 행복하고 안락하게 보내면 좋았을 텐데…. 2008년 3월 19일 오후 4시 23분. 60년을 연애한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책을 덮기 전, 하얀 백발에 구부정하게 굽은 몸의 노신사와 병색이 완연한 얼굴의 노부인이 담긴 흑백사진 한 장을 마주하게 된다. 젊은 연인은 노부부가 되도록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거센 풍파가 몰아쳐도 사랑으로 극복했다. 늘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견뎌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했다. 예순 해를 사랑으로 지으며 살아온 나날은 정말이지 꿈만 같았다.
“어쨌든 간에 인생이 꿈같지요. 사는 게 꿈같아요. 제 이야기는 이만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풍파를 겪어야 해요. 나는 이렇게 살아온 거지요. 백거이는 ‘그립고 보고 싶으니 바다가 깊지 못함을 비로소 알았네’라고 썼지요. 이 나이가 돼서야 알았어요. 바다는 깊지 않다는 것을.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다보다 깊다는 것을 말입니다.”
November21_Inside-Chaeg_02_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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